영화 '스파이더맨 3'는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말한다. 스파이더맨인 피터 파커는 대중의 연호가 이어지자 평소와 달리 우쭐해진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일자리를 잃은 애인 MJ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채 제 생각만 내세우다 결별을 선언당하고,신문사에선 경쟁자 에디 브록에 밀려 해고당한다.

어쩔 줄 모르던 피터는 순간 심비오트라는 외계 유기체에 감염된다. 미증유의 힘을 지닌 '검은 스파이더맨'으로 바뀐 피터는 브록의 애원에도 불구,특종이 날조됐음을 폭로함으로써 그를 궁지에 몰아넣고 삼촌을 죽인 샌드맨은 물론 친구인 해리에게까지 무차별적 폭력을 휘두른다.

심비오트 탓이라지만 실은 피터의 분노와 복수심,착한 자신에 대한 염증 등 내면에 감춰졌던 또 다른 본성이 드러난 것이나 다름 없다.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동일 인물이듯 책임감 강하고 여리던 소시민적 영웅에게도 전혀 판이한 모습 곧 야누스적 속성이 들어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야누스(Janus)란 성(城)과 집의 문을 지키는 신(神)이다. 다른 신들과 달리 그리스 신엔 없는 고대 로마의 토종신으로 수많은 신들 가운데 가장 먼저 제물을 받았다. 문을 지키자면 하나의 얼굴론 어림도 없다고 여겼을까. 보통은 두 얼굴의 형태로 나오지만 네 개의 얼굴로 그려진 것도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남이 하면 스캔들이라고 하거니와 경우와 상황에 따라 수시로 안면을 바꾸는 게 인간의 속성인가. 국내 인터넷 이용자들 대다수가 '야누스'적 행태를 보인다는 발표가 나왔다. 행정안전부가 네티즌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말과 행동이 달랐다는 것이다.

설문지 문항에선 인터넷 상에서도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각종 규칙과 법규 또한 잘 준수해야 한다고 답했지만 실제론 인신공격적 언어 사용,불법 다운로드,부정확 정보 유포 등 일탈 행위를 별다른 죄책감이나 큰 부담 없이 자행하더라는 얘기다.

야누스처럼 구는 게 어디 네티즌 뿐이랴.'장자연 사건'은 우리 사회에 두 얼굴의 남성이 여전히 적지 않음을 드러낸다. 그야말로 단순한 식사 자리인 줄 알았던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소문의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이런 일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 가족 등 아는 사람에겐 지킬박사,모르는 사람에겐 하이드인 이들이 너무 많은 모양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