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건축 디자인 업계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어떤 건물을 지으려면 서울시가 매주 한 차례 여는 건축위원회 심의를 통과해야 하는데,이를 통과하려면 최소한 세 번은 '퇴짜'를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도시 디자인을 중요시하는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이후 더욱 심해졌다. 그러다 보니 건축심의를 통과하는 데만 3~4개월이 훌쩍 지나간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한국의 경우 그동안 도시계획을 할 때 디자인 개념이 거의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서울시가 최근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디자인친화 정책은 환영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건설업자가 아닌 디자인업자가 보기에도 '심하다' 싶을 정도로 디자인에 집착해 의도하지 않던 부작용을 스스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 디자인 업계 관계자가 말한 '디자인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대체 무엇일까. 의문은 19일 서울시가 배포한 '공사 현장사무실,디자인을 입히다'는 보도자료를 보는 순간 풀렸다. 보도자료의 골자는 서울시내 공사현장의 사무실을 서울시가 마련한 8개의 표준 모델 중에서 골라 짓겠다는 것.공사현장 사무실 대부분이 컨테이너나 조립식 패널 등으로 지어져 있어 보기에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실 회색톤으로 일관된 공사현장 사무실이 시민들 보기에 썩 좋은 것은 아니다. 같은 값이면 미관을 고려해 현장 사무실을 짓겠다는 방침 자체는 환영받을 만하다. 문제는 이미 지어진 공사현장 사무실까지 새 디자인으로 다시 짓는다는 데 있다. 이미 지어진 현장 사무실도 리모델링을 하겠다는 게 서울시의 방침이다.

그러나 가건물 형태로 돼 있는 지금의 공사현장 사무실을 리모델링한다는 얘기는 사실상 깨끗하게 다시 짓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게 관련 업계의 설명이다. 현장 사무실을 다시 만들자면 돈이 들어간다. 이 비용은 건설원가에 포함돼 어떤 식으로든 입주자나 소비자,하청업자 등에게 전가될 게 뻔하다.

디자인친화 정책이 도시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부인하는건 아니다. 그렇지만 '공사 현장 사무실 리모델링'건을 보면 서울시의 '디자인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 대해 디자인업자조차 우려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