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여신 담당 임원들은 기업들이 당면한 최우선 과제는 "유동성 확보"라고 말했다. 또 "대기업에 대한 과도한 투자 압력은 안 되며 기업 스스로 판단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6일 한국경제신문이 정부와 여당이 잇따라 기업들에 투자 확대를 요구하고 있는 것과 관련,돈줄을 쥐고 있는 국민 우리 신한 하나 외환 등 주요 시중은행과 산업 기업 등 국책은행의 여신 및 기업금융 담당 임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결과다.

이정원 신한은행 여신심사그룹 부행장은 "기업들은 보통 유동성을 매출액의 4분의 1 또는 3분의 1 정도로 유지하는데 지금은 매출 부진으로 이전과 같은 매출을 올리는 데 자금을 더 많이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투자 의향이 있는 기업들조차 지금은 기회를 엿보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신동혁 산업은행 성장기업금융본부장은 "특히 대기업 협력업체들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중소기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유동성 확보"라고 말했다.

김하중 우리은행 부행장은 "위기 이후에 대비해 투자를 해야 한다는 얘기는 당위적으로는 맞지만 그것을 기업들에 강요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외환은행의 한 임원도 "미래 성장을 위해서는 연구개발(R&D)이나 설비투자를 확대해야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재무 건전성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남운택 기업은행 부행장은 "그러나 미래 성장산업에 투자하고 있는 기업에는 다소간의 리스크가 있어도 적극 대출한다는 게 은행들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자금 지원 요청에 대해 김하중 부행장은 "시설투자보다는 대부분 운영자금 확보가 목적"이라며 "실수요는 거의 없다"고 답했다.

정부의 중소기업 대출 확대 방침에 대해서도 최기의 국민은행 여신그룹 부행장은 "투자 효과와 함께 산업기반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금융 지원을 늘리려는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부 은행 임원들은 "이 과정에서 마땅히 구조조정을 해야 할 기업을 연명시켜 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내놨다. 또 기술력은 있지만 재무적으로 취약한 기업에 대해서는 정부의 보증 확대를 통한 지원 방침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심기/정재형/정인설/유승호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