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도 중순이다. 경칩(5일) 이후 내내 푹하던 날씨가 지난 주말엔 다시 한겨울같았다. 그까짓 봄바람쯤이야 하고 종일 야외에 나갔다 저녁 무렵 따뜻한 물에 들어갔더니 얼굴이 온통 새빨갛게 됐다. 손만 시려운 줄 알았더니 싸늘한 바람에 얼굴 피부가 반쯤 얼었던 모양이었다.

3월 중반 추위는 낯설지 않다. 강원도에선 4월에도 대설주의보가 발령되는 일이 있거니와 3월에 눈이나 진눈깨비를 만나는 일은 서울 인근에서도 흔하다. 서너해 전인가,서울에선 봄비 속에 출발했는데 경기도 가평 축령산에 도착했더니 사방이 온통 설국이었던 적도 있었다.

혹한이 기운을 잃는 듯하던 입춘(2월 4일) 이후 갑작스런 한기가 몰아치는 건 여한(餘寒),봄 기운 완연한 3월에 차가운 시베리아 고기압에서 비롯된 매운 바람이 불어대는 건 꽃샘 추위다. 기온은 기껏 해야 섭씨 영하 3~4도지만 체감 온도는 훨씬 더 낮다. 추위도 상대적인 탓이다.

얇아진 옷 사이로 시린 바람이 살 속을 파고 들어도 젊고 튼튼한 사람은 별 탈 없이 견뎌내지만 면역력이 약한 노인이나 어린이는 호흡기 질환 등에 걸려 고생하기 쉽다. '꽃샘 추위에 설늙은이 얼어죽는다'거나 환절기에 초상이 많이 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얘기다.

바람의 신이 제아무리 독하게 시샘을 부려봤자 계절을 막거나 거스를 순 없는 법.이번 주말이면 여기저기서 산수유는 물론 개나리와 비슷하지만 줄기가 위로 뻗는 영춘화 노란 꽃망울이 터지고,양지 바른 쪽엔 개나리와 진달래도 필 것이다. 그런 다음 벚꽃과 목련도 화려한 자태를 뽐내기 시작할 테고.

목련이 피기 전 때 아닌 진눈깨비나 눈보라가 한번쯤 더 휘날릴지도 모르지만 그래봤자다. 전대미문이라는 경제 위기가 바닥을 벗어나는 것 같다가 다시 미끄러져 내리기를 거듭하고 있다. 아예 한겨울이면 추우려니 할 텐데 봄이 온 듯하다 도로 주저앉으니 더 춥고 더 불안하고 스산하다.

그래도 겨울은 지나간다. 꽃샘추위는 봄의 전령일 뿐이다. 너무 춥다 싶으면 푸슈킨의 시라도 읽어볼 일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