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할아버지께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옛날에 한 사람이 천자문을 공부하는데,'하늘 천(天)' '따 지(地)' '검을 현(玄)' '누를 황(黃)' 그 넉 자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오직 그 네 글자만을 십년 동안이나 읽고 마침내 도통을 했단다. "

그 사람은 하늘 천을 배우고는 하늘이란 무엇인가 의심하며 속속들이 깊이 연구하고,따 지를 배우고는 땅이란 무엇인가 의심하며 궁구(窮究)했다. 검을 현을 배우고는 검다(유현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의심하며 궁구하고,누르 황을 배우고는 땅 속에서 생명이 노랗게 솟구쳐 올라온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의심하며 궁구했다. 이어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의 단계로 나아간 그는,하늘의 유현(幽玄)함이란 무엇이고 땅은 왜 생명을 밀어 올리는가를 궁구했다. 그 사람은 마침내 공맹의 현실적인 사상과 노장의 현란한 가르침과 천지의 법칙과 우주질서를 터득했다. 터득한다는 것은 우주의 율동에 따라 사는 법칙을 안다는 것이다.

인간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있지만 땅에 발을 디디지 않고는 못산다. 하늘의 뜻에 따라 살지만 땅의 질서를 어기지 못한다. 섭리다. 다사로운 햇빛도 우주의 한 무늬나 결이고 잔인한 쓰나미도 섭리 가운데의 한 줄기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주자학을 공부했으면서도 주자를 비판했다. 주자는 공자 맹자 다음 가는 성인이다. 성인은 하늘의 뜻에 따라 적의하게 우매한 백성들을 깨닫도록 하는 사람이다. 주자는 '중용'에 나오는 천명(天命)이란 말을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고 해석했다. 본연지성이란 불교의 선승들이 쓰는 말로,존재하는 모든 것들 속에 원래부터 들어 있는 근본적인 진리라는 것이다.

불상을 조탁해 놓은 조각가에게 "어쩌면 이렇듯 아름답고 자비롭게 조탁했는가"하고 묻자,그 조각가는 "원목을 실어 왔을 때 이미 속에 불상이 들어 있었으므로 나는 그것을 꺼내놓았을 뿐이다"고 말했다. 주자는 선승들의 말을 차용해,인간의 착함(천명)은 우주의 한 알맹이인 인간 속에 원래부터 들어 있었던 것(뜻)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천명을 '하늘의 뜻' 그 자체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비가 혼자 있으면서도 몸과 마음을 늘 반듯하게 가다듬는 것은 본연지성 때문이 아니고 하늘의 뜻(하느님)과 자리를 함께 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다산이 천주학의 영향을 받은 까닭이다.

사람은 하늘의 뜻과 땅의 질서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다산은 주장했다. 물 한 방울로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불 한 움큼으로 한 도시를 멸망시키기도 할 만큼 자연은 잔인하다. 한데 하늘의 참된 뜻은 강한 자의 힘은 부드럽게 하고 약한 자의 힘은 북돋워주려 한다.

세계는 오래전부터 시장경제가 주름잡아 왔다. 시장경제는 강한 자본이 약한 자본을 잡아먹는 정글의 법칙에 따라 운용된다. 이 땅에는 그 정글의 잔인한 법칙이 IMF를 타고 밀려 들어왔다. 바야흐로 미국으로부터 밀려든 경제 쓰나미는 전 지구적인 지각변동을 일으켜 놓았다. 이 정부는 그 시장의 질서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 부자들의 지갑을 열어야 서민이 그 덕에 잘 살 수 있으므로 부자들의 살림살이가 더 넉넉해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며 그들의 세금을 깎아주었고,묶었던 모든 규제를 풀어주었다.

다산은 냉혹한 정글의 법칙에 의해 굴러가는 잔인한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정치라고 말했다. 원효의 화엄(華嚴)을 깊이 읽을 일이다. 경제 한파를 돌파하기 위해서는,모든 권력자들이 이기심을 버리고 자기의 힘을 부드럽게 해 못 먹고 힘 없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다사롭게 포용하고 나누어야 할 때다. 우리들 삶의 궁극은 한 송이의 꽃이 돼 이 세상에 아름답고 향기롭게 장식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