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줄기세포에 연구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8년 만에 재개하는 행정명령(대통령령)에 서명했다. 이전의 미 부시 행정부는 생명윤리를 강조하는 보수 기독교계의 목소리를 반영,2001년 8월부터 줄기세포 연구 지원을 제한해왔다. 그렇다고 8년간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정체된 것만은 아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채권 발행을 통해 마련한 기금에서 매년 3억달러씩을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투입해왔다. 따라서 대선 기간 내내 줄기세포 연구 지원을 약속해온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미국을 '잠자던 바이오 거인'에서 '세포치료제 강국'으로 발돋움시키려는 강력한 의지 표명으로 받아들여진다.

박세필 제주대 줄기세포연구센터 교수는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행정명령에서 배아줄기세포 수립 및 배아복제에 관한 연구 지원만 허용했고 인간 복제의 단서가 될 일체의 연구는 금지했다"며 "행간의 뜻을 읽으면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를 비롯한 대다수 줄기세포 관련 연구들이 조만간 양지로 나와 다양한 연구 지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내에서도 이런 영향을 받아 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 사건으로 2006년 3월 이후 3년간 중단된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연구가 다음 달 중 재개될 전망이다. 10일 보건복지가족부와 생명과학계 등에 따르면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승인권을 보유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4월 중 전체회의를 소집,지난 2월 보류된 CHA병원(연구책임자 정형민)의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계획을 승인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미국의 줄기세포연구 재정 지원 방침에 따라 한국도 전향적으로 CHA병원의 연구계획을 검토해야 하는 입장"이라며 "윤리 문제만 해결되면 곧 연구가 재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체세포 복제 방식은 불임치료용으로 채취했다가 용도 폐기하기 직전의 여성 난자를 다량 사용하는 만큼 생명윤리 및 여성인권 문제가 지속될 전망이다.

박 교수는 "미국의 영향으로 줄기세포 치료제 연구는 당분간 수정란 및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에 쏠리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신의 체세포를 이용해 생명윤리 문제를 피하는 동시에 맞춤치료도 가능한 유도만능줄기세포(iPS)가 종착점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수정란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세포치료제 연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350~500종의 세포주가 확립돼 있고 이 중 국내는 CHA병원의 35종을 포함해 50여종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미국은 최근 4~5년 동안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집중,작년 12월 미국의 생명공학기업 제론(Geron)이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해 척수손상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시험에 대해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얻었다. 또 바이오벤처 기업인 ACT의 인공혈액 및 실명 치료제,노보셀의 당뇨병 치료제도 임상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에 반해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 수립에 관한 연구는 영국에서 2건이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세계에서 성공한 사례가 없다.

국내에서는 가톨릭 및 기독교계가 허용하고 있고 윤리적 논란에서 벗어나 있는 성체줄기세포의 연구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이다. 그러나 성체줄기세포는 특정 신경이나 혈관으로 분화되는 능력과 생존능력이 수정란 유래 배아줄기세포 및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보다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치료제로 개발하기엔 미흡한 점이 많다.

일본이 개척한 iPS는 난자나 수정란을 사용하지 않고 체세포에 바이러스를 주입,유전자를 변형시켜 줄기세포를 유도(역분화)하는 기술이다. 국내에서도 박세필 박사팀과 CHA병원 김광수 박사팀이 각각 사람 피부세포와 쥐 신경줄기세포를 이용해 iPS를 수립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역분화하는 과정에 이용되는 바이러스가 암을 유발할 수 있는 게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형민 박사는 "줄기세포 치료제는 한 질병당 수백억달러의 매출을 창출할 것"이라며 "심장병만 하더라도 지난해 국내 의료비 지출이 1조원에 달했기 때문에 이 중 10%만 대체하더라도 1000억원의 내수시장이 창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작년도 정부 줄기세포 연구지원금(344억원)은 일본 정부가 iPS를 개발한 교토대 연구팀에 지원한 예산(400억원)보다 적다"며 "이 분야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대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종호/서욱진 기자/워싱턴=김홍열 특파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