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강원도 홍천의 대명비발디파크.비씨카드 임직원 800여명이 단합대회를 벌이고 있는 대강당에 조명이 꺼지자 선글라스를 낀 노신사가 무대 위로 올라섰다. 조용필의 '꿈'을 열창하며 가창력을 뽐낸 그는 이어 '여행을 떠나요'를 부르며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노는 것도 일하는 것만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는 장형덕 비씨카드 사장(60)이었다.

"직원들에게 CEO(최고경영자)가 뒤로 빼지 않고 열정적으로 나선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순간적으로 '오버'를 좀 했다"고 그는 털어놨다. 하지만 효과는 만점이었다. 그 일이 있은 뒤 젊은 직원들도 그를 스스럼없이 대하기 시작했다.

◆열정을 불어넣어라

비씨카드는 11개 은행이 주주이자 회원사며 고객이기도 한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은행들이 신용카드 업무를 시작할 당시 결제망을 깔거나 가맹점 관리 등을 하기 위해 공동으로 출자해 설립한 은행신용카드협회가 모태다. 회원 은행들이 카드 마케팅과 고객 관리를 하기 때문에 비씨카드는 결제관리 등의 서비스만 제공하면 된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는 공기업적 마인드가 형성되기 쉬운 구조다.

장 사장은 취임 뒤 이런 조직 문화를 개혁하는 데 모든 것을 걸었다. 그가 내건 모토는 '열정'이었다.

그는 직원들의 열정을 북돋우기 위해서는 사장인 자신부터 열심히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가장 늦게 퇴근하는 사람,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자신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 결과 지금 그는 직원들로부터 '역대 사장 중 가장 독하게 일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 사장은 지난해 3월 말 취임한 뒤 노조 사무실을 가장 먼저 찾아갔다. 당시 노조는 장 사장 취임에 대해 '낙하산'이라고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취임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회사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해 노조 관계자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열정을 보여주면 노조도 수긍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노조는 회사를 잘 이끌어 나가겠다고 다짐하는 장 사장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장 사장은 공기업적이고 협회 같은 기업문화의 최대 피해자는 사장이 아니라 직원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같은 조직은 발전이 정체될 수밖에 없고 직원들은 꿈을 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개혁의 칼날을 빼들었을 때 젊은 직원들이 누구보다 많은 지지를 보내줬다.

◆감성에 호소하라

1950년생인 장 사장은 테니스 골프 등산 축구 등 가리는 종목이 없는 스포츠광이다. 골프는 핸디캡이 싱글이고 테니스도 프로선수 뺨친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얘기다. 스포츠를 좋아하기 때문에 중요한 발언을 할 때면 운동에 비유하는 습관이 있다. 교보생명 사장 시절에는 직원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야구경기에서 볼넷만 기다리는 선수만 있다면 그 팀은 절대 승리할 수 없다. 삼진을 당하더라도 과감히 방망이를 휘둘러야 한다"고 독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부드러운 남자'라고 강조한다. 얼마 전 TV에서 안구를 기증하는 프로그램을 보다 주책없이 혼자 눈시울이 붉어져 난처했다고 귀띔했다. 같이 시청하던 부인과 딸은 가만있는데 혼자 계속 눈물이 흘러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고.

그는 은행과 보험 카드 등 금융계의 주요 업무를 두루 섭렵했다. 씨티은행에서 금융계에 첫발을 들여놓은 뒤 씨티은행 소비자금융영업담당 상무와 중소기업담당 상무를 거쳐 서울은행 신용카드사업부 부행장과 교보생명보험 대표를 역임했다. 비씨카드 사장으로 내정되기 전까지는 국민은행 상근감사위원으로 일했다.

장 사장은 금융업 가운데 신용카드 업무가 제일 재미있다고 말한다. 이성이 아니라 감성에 호소해야 효과를 볼 수 있는 분야가 신용카드라는 설명이다. 은행은 금리를 조금만 올려도 손님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고객 유치가 쉽지만,신용카드는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지를 고객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훨씬 어렵고 까다롭다는 것이다. 신용카드에서 향기가 나는 '퍼퓸 카드',카드 사용시 빛이 나는 '셀라이트 카드' 등은 장 사장이 강조한 감성 마케팅의 산물이다.

◆안주하지 말라

장 사장은 요즘 비씨카드의 해외 진출을 꿈꾸고 있다. 비씨카드는 회원수 3400만명,카드 발급장수 4200만개,가맹점수 250만개로 국내 최대의 신용카드회사다. 국내 영업만으로도 충분히 이익을 낼 수 있지만 해외 결제망이 없어 국가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급 결제망은 국가 자존심이나 마찬가지라고 그는 믿고 있다. 그래서 결제망을 깔 생각이다. 우선 미국과 동남아시아 등 한국인의 카드 사용이 많은 국가에 국내전용 카드로 현금인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2014년까지 해외 영업이익 비중을 50%까지 높이겠다는 것이 그의 꿈이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