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기업 마케팅팀에 비상이 걸렸다. 비용 절감에 대한 압박으로 '마케팅 실탄'이 반토막났지만 성과에 대한 요구는 오히려 커졌기 때문이다. 자금 사정이 악화된 기업 중에는 아예 마케팅 예산을 책정하지 않는 곳도 있다. 마케팅 부서에서 예산을 요구하면 자금 담당 부서가 효율성을 엄밀히 따진 후 결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뜻이다.

이 같은 상황을 불경기에 불가피한 한 단면으로만 봐야 할까. 전문가들은 덮어놓고 마케팅 비용을 줄이면 경기침체로 위축된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제로베이스 예산 집행'은 자칫 의사결정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걸려 적기 마케팅에 실패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딜로이트는 최근 내놓은 보고서 '마케팅,위기의 시절'을 통해 지금은 낭비요소를 제거하되 마케팅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도 이 보고서의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다.

◆효과부터 측정하라

상당수 기업은 마케팅비를 어느 분야에 집중할지를 과거 사례에 비춰 즉흥적으로 결정한다. 연구 · 개발(R&D) 비용이 많이 들어간 전략 상품이 출시되면 대대적인 TV 광고 집행을 당연시한다. 제품의 성격에 따라 어떤 마케팅이 적절할지를 따져보는 것은 뒷전이다. 마케팅비의 거품을 걷어내려면 우선 마케팅 ROI(투하자본 대비 이익률)부터 계산해 봐야 한다. 기존의 마케팅이 성공적이었는지 여부를 제품군과 함께 데이터화해 ROI가 낮다고 판단되는 방식은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매장을 잘 찾지 않는 고객들에게 전단지를 보내지 않는 백화점 업계의 '디마케팅'은 ROI 계산을 통해 마케팅의 방향을 바꾼 대표적인 사례다.

마케팅과 관련해 조직 내에 어떤 인력들이 동원되는지,의사결정 과정엔 누가 개입하는지 등도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인력이 개입됐거나 의사결정 과정이 비정상적으로 길어진 사례들을 들춰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프로세스를 표준화하라

마케팅 성공사례를 데이터화해 정리한 다음엔 엇비슷한 케이스별로 마케팅 프로젝트를 표준화하고 매뉴얼로 만들어야 한다. 이 작업이 이뤄지면 경험이 많지 않은 담당자들이 아이디어를 구하는 과정에서부터 광고대행사를 선정하는 작업,그리고 소비자들과의 접점에서 마케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필요 이상의 비용을 쓰게 되는 문제점을 상당 부분 제거할 수 있다.

마케팅 담당자와 CEO(최고경영자)의 의사소통도 한층 쉬워진다. 과거의 데이터를 통해 새로 진행하는 마케팅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를 상당 부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패한 마케팅 사례를 담고 있는 데이터들도 도움이 된다. 일이 틀어진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조직을 효율화하라

세 번째 단계는 마케팅 조직의 구성과 마케팅과 관련된 의사결정 구조를 바로잡는 일이다. 우선 과거의 성공사례 데이터를 바탕으로 마케팅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한다. 직원에 따라 능력의 편차가 클 경우에는 적절한 교육 프로그램을 동원,업무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본사에서 직접 하는 것이 효율적인 일과 외부 전문가에게 위탁하는 것이 유리한 일을 구분하는 작업도 이뤄져야 한다.

의사결정 과정에도 '메스'를 댈 필요가 있다. 해야 할 마케팅의 종류와 예산을 정할 때 개입하는 인원을 가급적 줄이는 것이 효율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고객 요구를 실시간으로 반영하라

불경기에는 대중을 상대로 한 '매스 마케팅(mass marketing)'의 인기가 시들해 진다. 투입한 비용만큼 효과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시기엔 고객군별 '타깃 마케팅(target marketing)'이 효율적이다. 특정 제품군을 즐겨찾는 소비자들만 따로 떼어 내 이들이 흥미를 느끼는 신제품과 관련된 정보만 골라 보내주는 인터넷 쇼핑몰의 이메일 서비스가 타깃 마케팅의 대표적인 예다. 이 같은 방법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고객들의 성향을 수시로 조사해 이를 마케팅 계획에 연동시킬 필요가 있다.

브랜드 마케팅에 집중하는 것도 불황을 극복하는 지혜 중 하나다. 불경기에는 즉각적인 매출 증가를 노린 제품 마케팅보다 브랜드를 알리는 마케팅이 효율적이다. 경기가 회복된 이후에 대비해 제품 설명보다 브랜드 각인이 중요하다는 게 딜로이트의 논리다. 경기 침체기에는 브랜드 마케팅을 벌이는 기업들이 줄기 때문에 적은 횟수의 마케팅만으로 소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딜로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불경기에 브랜드 마케팅을 강화한 기업들이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경기가 호전된 후 가파른 매출 성장세를 보였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