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확보 소극적..환율은 천정부지

금융팀 =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달러'가 귀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은행들이 자체적인 외화조달과 외화 채무 축소 등에 소극적으로 나서면서 외환보유액만 축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은행들은 정부로부터 해외차입 지급보증을 받으면서 실물경제 지원과 경영효율화, 외화자산 매각과 중장기 차입 등을 추진하겠다는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그러나 은행들은 올해 해외 공개모집을 통한 대규모 외화채권 발행과 해외자산 매각, 지급보증을 통한 외화조달 등의 추진 실적은 미미한 것으로 드러났다.

◇ 은행들 달러 구하기 '미적미적'


3일 금융계에 따르면 은행들 중에서 올해 해외 공모를 통해 대규모 외채 발행에 성공한 곳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2곳에 불과했다.

이들은 지난 1월에 글로벌채권 발행을 통해 각각 20억 달러를 조달했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매입한 채권을 제외하면 실제로 해외에서 조달한 금액은 각각 15억 달러와 19억 달러다.

또 지금까지 외화차입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증을 신청한 건수도 전무하다.

정부는 은행들의 중장기 외화조달을 돕기 위해 작년 10월 말부터 올해 6월까지 시중은행의 외화차입에 대해 최대 1천억 달러 한도 내에서 3년간 지급보증을 서주기로 했으나 경영 간섭을 우려한 은행들은 신청 자체를 피하고 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올해 1월 신용경색이 해소됐을 때 은행들은 자체 외화조달이나 정부의 지급보증을 통한 외화조달이 가능했으나 기회를 놓쳤다"며 "은행들은 당시 조달비용 부담 등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고 시장 상황이 곧 풀릴 것으로 기대하고 기다렸다"고 지적했다.

외환은행, 하나은행 등 대다수 은행들은 시장 상황을 주시하며 언제라도 외화조달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중장기 외화채권 발행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도 3월 중에는 구체적으로 추가 공모 외채 발행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시장 여건이 더욱 나빠져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은행들이 해외 차입 시기를 저울질할 계획이나 시장 여건은 4월쯤에나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의 외화자산 매각 추진 실적도 거의 없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해외 유가증권 등의 외화자산의 비중이 낮은 데다, 시장 악화로 가치가 떨어져 지금 팔아봐야 손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투자은행(IB)본부에서 투자 유가증권을 적당한 가격 수준에서 팔고는 있으나 실적은 미미하다"고 언급했다.

◇ 은행들 "외화사정 문제 없다"


은행들은 외화수급 상황에 빨간불이 켜진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신한은행은 정부와 MOU를 체결한 이후 신용공여한도(크레디트 라인)를 3억8천만 달러 가량 늘렸으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기업어음 직매입 적격 금융기관으로 선정돼 뉴욕지점에서 8천만 달러를 조달했다고 밝혔다.

신한은행은 또 고정자산을 HP파이낸셜서비스를 통해 매각해 외화자금을 확보한 뒤 3년 후에 매각자산의 소유권을 되가져오는 '세일즈 앤 리스백(Sales & Lease Back)' 형태로 5천만 달러를 차입키로 했다.

국민은행도 유럽계 은행 등 해외 은행 4곳에서 총 4억1천만 달러의 크레디트 라인을 확보했으며 외화 유가증권 일부를 매각했다고 밝혔다.

농협 관계자는 "1~2월 중에 기업어음(CP) 발행 등으로 총 2억7천만 달러를 확보했으며 이달 중에 2억 달러를 조달하면 충분하다"며 "자산을 매각하는 것은 마지막에 할 단계로 아직 그 정도의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리은행 역시 올해 상반기에 만기도래하는 중장기 외화 차입액 7억 달러 중에서 이미 5억4천만 달러를 확보했고 추가로 1억6천만 달러 조달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우선 자체 조달에 최선을 다하고 필요하면 정부의 지급보증을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글로벌 금융시장 악화와 국내 기업들의 자금난 등을 감안할 때 외화자산 축소 등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보유한 외화자산 중에서 대부분은 기업에 나가는 외화대출과 수출입금융이어서 마음대로 줄이지도 못하고 있고 해외 투자 유가증권은 보유 비중이 낮아 팔아봐야 외화수급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원.엔 환율 급등으로 이자 부담이 커진 엔화 대출자들이 시중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추진 중인 상황에서 은행들이 엔화대출을 회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 "은행, 외환보유액만 축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은행들이 외화조달에 뒷짐만 지고 외환보유액만 축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작년 9월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신규 외화차입이나 만기 연장이 막히자 은행들은 주로 외환당국이 공급한 달러를 활용해 외채를 상환했다.

이에 따라 외환보유액은 작년 8월 말 2천432억 달러에서 올해 2월 말 2천15억4천만 달러로 6개월 간 400억 달러 이상 증발했다.

은행에 대한 지원으로 외환보유액이 2천억 달러 선으로 줄어들면서 당국이 시장 안정을 위해 달러를 사용하는 것도 쉽지 않아졌다.

당국이 환율 안정보다는 은행들의 외채상환에 신경을 쓰다보니, 시장안정을 위해 외환보유액을 투입하기가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더구나 정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은행들이 정부의 외화조달 능력 이상으로 높은 신용등급을 받는 것도 어려워졌다.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도 최근 이같은 이유로 국가 신용등급보다 높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국민은행 등 8개 국내 은행의 신용등급을 국가신용등급과 같은 'A2'로 하향조정했다.

장재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정부의 지급보증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의 신규 차입 실적이 거의 없다"며 "은행들은 외환보유액에만 의존하기보다 해외채권을 발행해 자본을 확충하는 등의 자구노력이 불가피하다"고 조언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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