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여자.' 이정옥 대표가 흔히 듣는 말이다. 무엇보다 추진력과 설득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2000년 초 영업 담당 임원이 주도한 집단 퇴사 사건으로 경쟁 업체에 주요 건설사 고객을 모두 빼앗겼지만 1년도 안 돼 대부분 되찾은 일화가 이를 잘 말해 준다. 흙먼지 가득한 건설 현장을 직접 찾아가 자재 담당은 물론 시공 실무자인 이른바 '노가다 십장'들을 일일이 만나며 '제품력'과 '신의'를 강조한 노력의 결과였다.

"참는 것은 엄마를 닮았고,집요한 건 아빠를 닮았다고 하더라고요. '여자니까 이런 일은 할 수 없다'는 등의 고정관념이 없는 편이에요. "

이 대표가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한 대표적인 일이 바로 구조조정이었다. 그는 2001년 취임 직후 "3년이면 기반을 다질 수 있다. 믿고 기다려 달라"며 곧장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우선 강성 노조 활동으로 유명했던 연마기술팀 직원들을 분사시키는 작업에 착수했다. "용역비가 15% 이상 더 비쌌지만 연마 작업의 상당량을 다른 업체에 맡겼어요. 기존 연마팀에 '일하기 싫으면 일하지 말라'는 모종의 경고를 보낸 셈이죠."

시간 외 수당을 받을 수 있는 잔업 일감이 없어진 직원들은 결국 "일 좀 하게 해 달라"며 이 대표를 찾아왔고 그는 이들을 설득해 적정량의 일감을 약속한 뒤 연마기술팀을 분사시켰다.

이 대표의 강단을 짐작케 하는 대목은 또 있다. 당시 아무도 말을 꺼낼 수 없었던 '창업 공신'까지 모두 정리한 것.고임금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

여자이기 때문에 받는 불이익은 없었을까. 그는 "처음엔 약점이었지만 나중엔 오히려 강점이 됐다"고 잘라 말했다.

"젊은 여자가 현장에 나오니 호기심이 발동하는 눈치더라고요.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지만 결국 신뢰가 쌓이니까 모든 문제가 다 풀렸어요. 만난 사람 중 한두 명이 제 말을 믿어 줬고,이들이 결국 업계에 여론을 형성해 준 거죠."

술을 잘하진 못하지만,술자리에서도 '성의껏' 마시려 노력하기 때문에 오히려 고마워한다고.회사가 더 커지고 경영에서 물러나게 되면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학원을 설립하는 게 꿈이었어요. 1층엔 주산학원,2층엔 붓글씨학원,3층엔 꽃꽂이학원,4층엔 일본어 학원이 들어선 종합 학원 같은 거죠.어린이부터 할아버지까지 다 아우를 수 있는 그런 거요. 아버지가 SOS만 치지 않았어도 그 꿈을 벌써 이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