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자본확충펀드가 3개월간의 논의 끝에 윤곽을 드러냈다. 은행의 자본건전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출발했으나 논의 과정에서 실물경제 지원을 위한 자금 지원으로 선회했다. 정부는 시중은행이 우려하는 경영권 간섭은 하지 않되 자금의 사용처를 중소기업 대출 확대와 기업 구조조정으로 엄격히 제한하기로 했다.

◆20조원 투입?b200조원 지원 여력 갖춰

당초 자본확충펀드는 은행의 자본건전성에 대한 국내외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논의가 시작됐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말 기준 기본자기자본비율 9%,자기자본비율 12%를 넘지 않는 은행에 자본확충펀드를 강제 투입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은행들이 부실 발생을 우려해 시중에 돈을 풀지 않아 자금경색이 심화되자 정부는 방향을 수정,실물경제 지원을 위한 자금으로 용도를 바꿨다. 중소기업 신규대출 및 만기연장,신용보증기관 출연,워크아웃기업에 대한 유동성 지원,구조조정펀드 출자,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지원,부실채권 정리 등에만 자금을 활용토록 했다. 자금집행 내역은 금융당국으로부터 사후감독을 받게 된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자본확충펀드는 은행의 실물지원과 매칭돼 지원한다는 개념"이라며 "실물지원에 따른 대손충당금 부담은 정부가 보강해 주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은행의 자기자본비율 10%를 적용할 경우 20조원 투입만으로 그 10배인 200조원의 대출여력이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금융 농협 등 전액 신청 방침

시중은행들은 일단 적극적으로 자본확충펀드를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자본확충펀드를 통해 시중금리보다 좋은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만큼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한도액을 한꺼번에 다 신청할지,추후 시장상황을 봐가면서 결정할지는 은행별로 입장이 엇갈린다.

우리은행은 일단 배정된 한도액 2조원 전부를 하이브리드채권 발행용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현재 7% 중반대인 기본자기자본비율을 9%대로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금융 계열의 광주와 경남은행도 각각 배정된 3000억원을 모두 신청하기로 했다. 하나은행과 농협도 배정된 한도만큼 모두 사용하겠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방은행 중 대구와 부산,전북은행은 지난해 말과 지난달 자본확충을 통해 BIS비율을 높여놓은 만큼 당장 쓸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외국계 은행들도 당장은 신청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현재로선 신청할 계획이 없다"면서 "본사와 협의해 최종 입장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론스타가 대주주인 외환은행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며 "다만 구체적인 조건이 제시된 만큼 내부검토를 거쳐 최종 입장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심기/정재형/정인설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