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BizⓝCEO 기획특별판 입니다 >

"불황 속에 중소기업이 승부수를 띄울 수 있는 곳은 막대한 R&D 비용이 필요한 '하이테크' 산업보다 기존 기술을 응용해 새로운 쓰임새를 만들어내는 '하이터치' 산업이 유리하다. 여기서는 튀는 아이디어 하나만 있으면 적은 인력과 자본으로도 노다지를 캘 수 있다. "

2005년 연간 수출액 200만달러를 돌파한 데 이어 올 매출 300억원을 낙관하고 있는 어느 중소기업 A사장이 털어놓은 성공 비결이다.

외환위기 직전 공장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하루아침에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던 그는 직원들과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회사를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텨냈다. 그는 전문 기술자 출신도 아니고 사업경험이 풍부하거나 자본이 넉넉한 사람도 아니었다. 단지 시장성과 가능성이 있는 아이디어를 자산으로 삼아 재기의 발판으로 삼았을 뿐이다. 처음에는 막막했지만 고품질은 곧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경영의 기본'에서 길을 찾았다. 불필요한 비용을 모두 줄이고 품질향상과 서비스에만 주력했다. 오직 고객을 위한 하이터치 서비스에 고심하고,이를 영업일선에 반영했다. 이 회사 공장 앞에는 지금도 '품질은 인격'이란 구호가 새겨진 간판석이 우뚝 서있다.

A사장처럼 누구든 좋은 아이디어와 약간의 자본만 있으면 얼마든지 창업할 수 있는 시대다. 아직도 기업을 전문 엔지니어나 과학기술자들의 전유물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시대의 흐름에 한참 뒤처져 있다고 봐야 한다.

세계는 '생산의 시대' '기술정보의 시대'를 지나 '감성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감성의 시대에는 남다른 서비스로 고객들의 니즈를 만족시켜야 살아남을 수 있다.

과거에는 기술이란 씨앗에서 제품을 만들어 이를 대량 생산하는 '시즈'(Seeds)형이 주류였다면,이제는 고객의 잠재적 수요를 발굴해 내는 '니즈'(Needs)형의 시대다. 시즈형이 기술 중시의 하이테크를 강조한다면 니즈형은 감각을 중시하는 하이터치를 강조한다. 최근 들어 하이테크를 중시하는 '제품'(Product)과 하이터치를 강조하는 '서비스'(Service)를 갈라놓던 전통적인 이분법이 무너지고 있다.

양자의 창조적 절충을 통해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감성을 자극하는 '하이터치 제품'이 늘어나는가 하면,기능을 강조하는 '하이테크 서비스'도 많아지고 있다. 제조업체인지 서비스기업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운 '혼합'(Hybrid) 회사도 드물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IBM이다. 전 세계적으로 서비스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IBM의 사명(社名)은 '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의 준말이다. 지난날 사무용 '기계'의 혁신을 이끌면서 컴퓨터 사이언스(Computer science)라는 분야를 개척했던 회사가 오늘날에는 사무용 '서비스'의 혁신을 주창하면서 서비스 사이언스(Service science)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실제로 IBM의 총수익 가운데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6년엔 21%에 불과했으나 10년 후인 2006년에는 53%로 불어나 하드웨어 비중을 압도하고 있다. 겉으로는 비즈니스 기기를 팔지만 속으로는 그 기기를 이용해 할 수 있는 '비즈니스 서비스'를 팔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제조업도 서비스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일,서비스 과정을 설계하고 재배치하는 일,서비스 방법을 만들고 고치는 일을 '강 건너 이야기'로 치부하면 안 된다. 서비스는 모든 산업의 주제가 되기 때문이다.

블루오션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장 환경 속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고 그 종착역은 기업경영의 영원한 화두인 '고객'에 있다. 서비스경영은 궁극적으로 고객 한사람 한 사람에게 맞춰주는 서비스,감동을 주는 서비스를 통해 고객을 만족시키고 여기서 얻은 신뢰를 통해 경영성과를 높이는 것이다. 10년이 지나면 강산이 변한다지만,IBM이 세월의 나이테를 차곡차곡 쌓아올리면서도 여전히 각광받고 있는 것은 고객의 '가치'를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품질과 경영기술을 구사해도 고객이 외면하는 기업은 망할 수밖에 없다. 당대 최고의 경영자를 영입한다고 해도 고객과 격리돼 있다면 허망한 노력에 그칠 것이다.

결국 고객의 요구를 파악하고 준비하며,궁극적으로 고객을 만족시키는 길만이 기업의 영속성을 보장받는 유일한 방편이다. '제조업의 효율성'과 '서비스업의 창의성'을 모두 갖춘 '하이브리드' 기업만이 21세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신재섭 기자 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