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일본 국민들은 망신살에 얼굴을 들지 못했다. 지난 14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 · 중앙은행 총재회의에 참석한 나카가와 쇼이치 재무상이 술에 취해 몽롱한 표정으로 거의 졸면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 국제적 조롱거리가 됐기 때문이다.

그는 기자회견 20분 내내 혀가 돌지 않아 말을 잇지 못하거나 엉뚱한 답변을 해대 기자들을 아연실색케 만들었다. 기자회견 직후 바티칸박물관 관광에 나선 그는 술이 덜 깨 역사적 미술품에 손을 대고,접근 금지구역에 들어가 경보가 울리게 하는 등 온갖 추태를 다 부렸다. 세계 경제위기 해법을 찾기 위해 열린 G7회의에 세계 2위 경제대국 일본을 대표해 참석한 재무상의 꼴불견은 일본 국민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기에 충분했다.

일본 국민들이 나카가와 재무상에 더 화가 났던 건 지난주 초 일본을 방문했던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과 비교됐기 때문이기도 했다. 16일 밤 도쿄에 도착한 클린턴 장관은 나카가와 재무상과는 너무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시차적응을 할 여유도 없이 다음 날 아침부터 밤까지 무려 14시간의 빡빡한 공식 일정을 수행했다.

17일 아침 8시 메이지신궁을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미 · 일 외무장관 회담과 오찬,오키나와 주둔 미해병대 괌 이전 협정서명,미 · 일 외무장관 공동 기자회견,하마다 야스카즈 방위상 면담,일본 왕실 예방,일본인 납치 피해자 가족 면담,도쿄대 학생과의 대화,2개 신문과의 인터뷰,아소 다로 총리 면담과 만찬,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 면담 등 모두 14개 일정을 소화했다.

시종 환한 웃음과 자신감에 찬 얼굴로 국익을 위해 종횡무진 뛰는 클린턴 장관의 모습은 대낮부터 술에 취해 눈이 풀린 나카가와 재무상과 비교돼 일본 국민들을 더 수치스럽게 했다.

나카가와 전 재무상과 클린턴 장관은 똑같이 한 나라의 장관이긴 했지만 근본적 차이가 있었다. 나카가와 전 재무상은 알콜중독에 가까운 술꾼이다. 그건 일본 정가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아소 총리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그를 재무상이란 중책에 앉혔다. 일본 언론이 '맹우(盟友)'라고 부를 정도로 친한 친구 사이라는 게 크게 작용했다. 2세 정치인이란 공통점에 극우 성향이란 점에서 둘은 죽이 잘 맞았다. 한마디로 정실인사였다.

반면 클린턴 장관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놓고 다투던 라이벌이었다. 그런 그를 오바마 대통령은 행정부의 중추인 국무장관에 임명했다. 대통령에 도전할 만큼 실력과 도량이 충분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건 능력주의 인사였다.

정실인사와 능력주의 인사의 차이가 한 나라의 위신을 세우기도 하고,망가뜨리기도 한다는 걸 일본 국민들은 지난주 뼈저리게 느꼈다.

일본의 한 유력신문 논설위원은 "나카가와와 힐러리 클린턴씨의 상반된 모습은 아소 정부와 오바마 정부의 경쟁력 차이를 극명히 보여준 것"이라며 "일본 국민과 기업들이 지금의 경제위기를 더욱 두려워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과연 어느 쪽에 더 가까울지 냉정히 뒤돌아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