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전자 회장과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배순훈씨(67)가 공모를 거쳐 지난 21일 3년 임기의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임명됐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장인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일반 행정직과는 다르지만 굳이 비교한다면 실장급(1급) 공무원으로 장관 출신의 이번 발탁은 '파격'이다. 문화예술계의 정부 소속 기관장이나 단체장 임명을 놓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코드인사' 논란과 보수 · 진보 간 이념적 갈등이 있었으나 배 전 장관의 임명을 계기로 이러한 인사관행에도 변화가 올지 주목된다.

문화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국립현대미술관에도 최고경영자(CEO)형 관장이 임명돼 운영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 "배 전 장관의 임명은 국군 기무사령부 부지에 들어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분관 조성에도 힘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배 전 장관은 "작년 8월에 한국과학기술원으로부터 정년이 없는 특훈교수 지위를 받았으나 이를 포기했으며,미래세대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생각으로 직급을 따지지 않고 응모했다"고 밝혔다. 돈 · 명예를 얻는다거나 미술분야에서 새로운 경력을 쌓으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껏 받고 누려온 것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기업인 출신이 미술관 CEO로 가는 것에 대해 기대를 많이 하는 것 같아 책임이 무겁다"면서"국립현대미술관이 기업 상품디자인의 기초를 제공하는 데 주축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배 전 장관은 미술행정 경험은 없으나 미술과는 뗄 수 없는 인연을 쌓아왔다. 중고교생 때부터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을 자주 받았고 서울대 공대 재학시절에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미대생과 자주 어울렸다고 한다. 그러다가 화가 신수희씨(65)와 결혼했고,아들 정완씨(35)는 건축가 겸 설치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배 전 장관은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현대미술관은 정부와 기업이 적극 후원해 새로운 '문화 아이콘'을 생산해 내는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면서 "옛 기무사터에 들어설 현대미술관 분관을 국제적 수준에 맞춰 건립하고 기업들의 상품 디자인 경쟁력의 원천 기술을 제공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한국현대미술을 세계화하는데 연 500억~600억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정부 예산이나 기업 지원금을 대폭 늘리는 것은 물론 좋은 전시회를 기획하는 데도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