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공회의소가 매출액 상위 500대기업을 조사한 결과 대상기업의 45.2%가 잡셰어링(일자리나누기)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또 응답기업의 90% 이상은 고용위기 극복방안으로 잡셰어링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잡셰어링의 필요성에 대해 대부분 기업들 사이에 폭넓은 공감대(共感帶)가 형성돼 있다는 뜻에 다름아니다.

하지만 잡셰어링이 빠르게 확산돼 나갈 수 있을지는 낙관을 불허한다. 아직 입장을 정하지 못한 기업이 전체의 절반(49.6%)에 이르는데다 동참 의사를 밝힌 기업도 경영여건 악화를 의식해 임금동결 또는 삭감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까닭이다. 특히 노조가 있는 기업의 경우 노조가 잡셰어링에 찬성할 것으로 예상하는 곳은 27.6%에 머물러 임금삭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최근 잡셰어링을 도입한 일부 공기업과 금융회사의 사례를 봐도 이런 점은 뚜렷이 드러난다. 이들 기업은 대졸 신입사원의 임금을 삭감하고 임원진의 보수를 반납하는 방법으로 청년인턴 채용 등 일자리 나누기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임금삭감에 대한 노조의 동의를 얻지 못한 탓이다. 이 때문에 일부 기업에서는 고참 직원들의 임금이 임원진을 웃도는 등 임금구조가 크게 왜곡되는 경우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노동계는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경제 여건과 고용시장 사정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일본 등 주요국들의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추락하고 기업 매출과 이익규모 또한 급감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에 부담을 주지 않고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은 기존의 임금수준을 낮추는 길밖에 없다.

노조도 이제는 기득권(旣得權) 유지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시기다. 전반적인 임금 구조조정을 받아들여 고통을 분담하면서 기업들이 일자리를 최대한 지키고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 한다. 경제위기에 신음하는 국민들과 아픔을 나눈다는 측면에서도 그러하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