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오랜 가뭄 끝에 전국적으로 단비를 뿌렸습니다. 불황은 기업 입장에선 갈수기입니다. 성장의 자양분인 수요(물)가 급감하면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갈수기 때 기업의 건강도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물에 잠겨있던 하체를 보이게 되지요. 하체가 튼튼해야 상체를 잘 지탱해줄 수 있다는 건 당연지사,투자자 입장에선 좋은 기업을 고를 찬스가 됩니다.

실제 불황이 깊어지면서 기업들의 하체가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반도체 업계에서 일본 · 독일 · 대만의 경쟁업체들이 천문학적인 누적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차례로 '백기'를 들면서 '치킨게임'으로 불리는 업체의 살아남기 경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게 대표적입니다. 반도체는 기술 발전으로 인해 생산량이 급증하면 공급 과잉과 가격 폭락 현상이 빚어지고 이어 치열한 생존경쟁을 통해 승자와 패자가 나뉘곤 합니다. 이번 생존경쟁에서는 세계 3위와 5위의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일본 엘피다와 독일의 키몬다가 먼저 체력이 바닥났습니다. 엘피다는 일본 회계 기준 3분기(10~12월) 실적 발표에서 618억엔(한화 9300억원) 매출과 723억엔(1조90억원)의 순손실을 냈습니다. 적자 규모가 매출을 넘어섰습니다. 부랴부랴 엘피다는 대만업체 3곳과 경영통합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 반대급부가 생길 수 있다는 즐거운 상상이 가능합니다. 실제 이들 회사 주가에는 이런 기대심리가 반영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이 죽을 쑤고 있는 가운데 현대자동차가 미국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 볼 뉴스입니다. 현대차는 도요타 등 경쟁업체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한 가운데 1월 미국시장 판매가 14%나 늘었답니다. 일자리를 상실할 경우 판매한 자동차를 되사주는 '바이백'제도를 전격 도입한 결과입니다. 남들이 못하는 마케팅 기법을 과감히 도입해 효과를 보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증시의 등대 역할을 하는 외국인들이 한국시장에 부쩍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건강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이 어느 정도 갈렸다고 판단한 때문 아닐까요.

남궁 덕 부장 nkd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