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의 A건설사 본사.이 회사 홍보팀 K 과장은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평소보다 두 시간 앞당겨 출근했다. 이날 오전 7시 워크아웃(기업개선절차) 실사를 위해 도착한 회계법인 실사팀을 맞기 위해서였다. 앞서 A사는 지난달 다른 10개 건설사와 함께 금융권으로부터 C등급(부실징후 기업)으로 선정돼 워크아웃 개시 결정을 받았다. 실사를 통해 회생 가치가 청산 가치보다 높게 나오면 워크아웃이 계속 추진되고,그렇지 않으면 워크아웃이 중단된다. 총 19명으로 구성된 실사팀은 이 회사의 한 회의실을 통째로 빌린 채 6~7명씩 3교대로 밤 10시까지 실사를 벌였다. 그나마 이날은 사무 공간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일찍 끝냈다. 이후 실사팀은 매일 오전 7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실사를 진행하게 된다.

A건설사 직원들도 이들의 스케줄대로 출 · 퇴근할 수밖에 없다. 이미 회계 · 재무팀과 주택사업팀 직원들은 두 달 전부터 실사에 대비,거의 매일 밤샘 근무를 해 왔다. K 과장은 "한 직원은 차에 와이셔츠를 일곱 벌이나 마련해 놓고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A사는 실사를 거쳐 경영 정상화 방안이 나올 때까지는 사실상 돈을 새로 끌어올 수 없어 신규 사업을 벌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심지어 C등급으로 선정된 이후 완공된 공사의 대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건설사가 부도 등의 상태에 놓일 때 보증기관이 시공사 대신 기존 계약자들에게 하자 보수를 해 주기로 약속하는 '하자보수 보증'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대한주택보증이 10일부터 워크아웃 대상 건설사에 대한 보증을 재개키로 해 사정이 좀 나아질 전망이다.

실사팀도 이 같은 건설사의 어려움을 감안,한 달 내 실사를 끝낸다는 계획이다. 주 채권은행은 실사 결과에 따라 채무상환 유예 기간인 오는 4월22일보다 약 3주 앞선 다음 달 말까지 경영 정상화 방안을 세우기로 했다.

부실한 건설사를 무리해서 살릴 필요는 없다. 그러나 조속한 워크아웃을 통해 고용 창출과 경제 발전에 기여하도록 탈바꿈할 수 있는 기업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경제를 활성화하고 건설사의 고통을 덜기 위해 정확하면서도 신속한 옥석 가리기가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