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간 쏟아져 나온 국내외 경제지표를 보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금년도 세계경제 성장률을 다섯 번째 하향조정해 발표했는데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은 모두 큰 폭의 마이너스를 기록할 전망이다. 전후 세계경제를 주도하던 미국은 지난해 4분기 마이너스 3.8%의 성장을 보인 데 이어 수출도 19.7%가 줄었다.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구조조정계획을 쏟아내는 가운데 국제노동기구(ILO)는 올해 최대 5000만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발표했다. 우리 경제도 예외는 아니다. 등락을 거듭하던 환율과 주식시장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으나 실물시장은 본격적인 침체기를 맞고 있다. 작년 4분기 가계소비는 2003년 카드채 사태 이후 최대폭인 마이너스 3.4%를 기록했다. 수출도 작년 11월부터 마이너스 행진을 기록하다가 금년 1월에는 마이너스 32.8%로 사상 초유의 기록을 보였다. 굴지의 간판 기업들도 최근 영업적자를 공시했다.

이러한 와중에서 지난달 말 스위스의 스키리조트인 다보스에 41명의 전 · 현직 국가수반과 60여명의 장관급을 포함,세계 96개국에서 2500여명의 정치 · 경제 · 학계 · 언론계 지도자들이 모였다. 지금의 경제위기가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촉발됐다는 점,규모면에서 2차대전 후 최대라는 점,한 국가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G20 정상회의를 통한 국가간 협조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쉽게 의견이 접근됐다. 그러나 5일간 지속된 회의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가 언제 끝날 것인지,주제인'경제위기 이후 세계'가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찾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필자가 특히 놀란 사실은 많은 참석자들이 한국 경제상황을 잘못 이해하거나 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금융위기를 예견했다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한국 경제가 시간이 지나면 더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나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는 한국을 포함해 일본,대만 등 무역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세계 경제 하강기에 더 큰 영향을 받게 된다고 우려했다.

모두 단편적으로 일리가 있겠으나 한국의 저력을 경시하고 있었다. 한국의 무역의존도가 여타 국가보다 높아 해외 경기변동에 취약한 것은 사실이나 우리 수출은 이미 230여개국으로 다변화돼 있다. 특히 70% 이상이 개도국으로 수출되는데 이들 국가는 올해도 플러스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선진 각국들의 경기진작을 위한 재정지출도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세계경제상황이 다급해지면서 중국의 역할은 더 커지고 있다. 다보스 포럼에서도 중국 관련 세션은 인기가 높았다. 반면 세계 11위 무역국가이자 13위 경제대국인 한국의 국제무대에서의 활동은 상대적으로 미약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작년 11월 워싱턴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우리의 발언권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금번 다보스 포럼에서 최태원 SK 회장의 제의로 '한국의 밤'을 연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었다. 이날 행사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한승수 총리 외에도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중동 국가들의 에너지 장관과 다국적 기업 대표 등 300여명이 참석해 대한민국 브랜드를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외환위기와 이번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100억달러를 버는 것은 굉장히 어려워도 이를 잃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점을 우리는 체득했다. 우리 경제에 대한 실상을 국내외에 정확히 알리는 일과 국가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일은 좋은 제품을 열심히 만들어 틈새시장으로 수출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이 이번 다보스 포럼에서 얻은 메시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