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에서 보호무역주의 기류가 뭉게뭉게 피어오를 때 나온 발언이어서 영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내정자 신분으로 한 중국 환율 얘기다.

그는 지난달 22일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서면답변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이 환율을 조작하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을 포함해 공정한 무역원칙을 훼손하는 어떤 나라도 그런 행태를 지속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듣긴 좋아도 '공정하다'는 말은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색깔이 확 달라지는,학문적으로조차 정의하기 어려운 단어다. 힘있는 나라가 '공정무역'을 강조하면 보호무역주의 악령이 되살아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금을 제때 내지 않아 궁지에 몰렸던 가이트너가 의원들의 정서를 어루만지는 효과를 노렸는지는 알 수 없다.

세계경제를 궁지에 몰아 넣은 미국 발(發) 금융위기가 도대체 왜 터졌는가. 가이트너의 발언에 기분이 상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미국 금융감독의 실패를 언급했다. 화가 치민 미국 최대 채권자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지적이다.

글로벌 수지 불균형이 금융위기를 촉발시켰다는 분석도 굳이 저평가된 위안화를 언급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전할 수 있었다. 2001~2007년 양국은 인플레이션 유발없이 고성장을 이뤘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뒤,6년 동안 수출증가에 힘입어 두 자릿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저축률도 높아졌다. 2000년 38%였던 저축률이 2007년 51%로 치솟았다. 프랑코 모딜리아니의 '라이프 사이클 가설'에 따르면 소비는 전 생애에 걸쳐 일정하거나 서서히 증가한다. 헌데 소득이 급격히 불어난 데다 경제활동 인구 급증으로 총저축액이 늘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국내 투자에 쓰고 남은 돈은 결국 해외에 투자해야 한다.

미국은 반대다. 지난 14년 동안 소비가 소득을 초과했다. 그만큼 미국인들은 소비를 즐긴다. 자본이 계속 유입돼야 버틸 수 있는 구조다. 이러다 보니 해외 쪽 달러 수요 증가로 달러가치 상승 압력이 적지 않았다. 달러 가치 상승은 미국 상품의 경쟁력을 잃게 한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저금리 정책을 고수한 것도 적정 달러가치를 유지해 미국 산업을 떠받치기 위해서였다. 폭증한 유동성에 다시 한번 펌프질을 한 게 바로 월가 투자회사들이다. 눈 감고 몇 십만달러씩 빌려주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관행이 그렇게 형성됐다. 이를 두고 첨단 금융기법이 '골디락스'(인플레 없는 경제성장) 시대를 열었다고 떠든 것이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미국산 철강제품을 쓰도록 하고 금융사들로 하여금 미국인을 우선 고용토록 하는 법안을 만들어서 풀 순 없는 노릇이다. 유권자 표를 의식한 행동이라고 봐주기에는 상황이 워낙 좋지 않다.

미국은 보호주의 대신 중국 등 개도국 정부에 소비를 늘리고 금융시장을 활성화시켜줄 것을 요청해야 한다. 미국이 보호무역 색채를 드러내면 금융위기의 책임을 다른 나라에 전가하는 꼴이 된다. 의원들의 보호무역주의 성향을 경계해야 했던 가이트너가 중국 환율 문제를 건드렸으니,첫 단추를 잘못 꿴 꼴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