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이 금융하고 뭐해서 돈을 몇 조원씩 벌잖아. 농협이 번 돈을 농민에게 돌려줘라 이거야. 농협이 돈 벌어가지고 사고나 치고 말야…."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2월4일 새벽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농협 개혁론'을 제기한 후 두 달여가 지났다. 그 후 농협개혁 작업은 한동안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했다. 농협 경영진이 나서서 고개 숙여 국민들에게 사과하고,정부는 지난주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정권 초기마다 쟁점화됐다 흐지부지됐던 농협 개혁이 이번엔 결실을 맺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역시 무리한 희망이었을까. △농협 중앙회장의 권한 축소(단임제 · 인사권 감축) △조합원의 조합선택권 확대 등의 내용을 담은 개혁법은 국회 해당 상임위(농수산식품위)에 도착하기도 전에 좌초될 위기를 맞고 있다. 여야가 한 목소리로 반대하고 있어서다.

그 중에는 "조합 선택권은 조합 간 갈등을 낳는 등 여러 문제가 있어 필요 시 보완해야 한다"(한나라당 L의원) "중앙회장의 권한 축소 등은 농협을 관치금융으로 만들려는 의도다"(민주당 C의원)라는 식의 다소 그럴싸한 명분도 있다. 그러나 "어디다 대고 농협개혁,개혁 하느냐. 농협이 얼마나 할 일이 많은데…"(자유선진당 L의원)라며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때문에 해당 상임위에선 "농협개혁법은 우선 순위에서 밀린다"며 처리 지연을 기정 사실화하는 분위기까지 감지되고 있다고 한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농촌 출신 의원들의 반대가 예상되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환골탈태의 뜻에서 국민들에게 사과까지 했던 농협중앙회 임원들까지 물밑에서는 개혁법을 막기 위한 로비전을 벌이고 있다"며 농협의 치밀하고 조직적인 반발에 혀를 내둘렀다. 정부는 이에 의원들을 상대로 한 '맨투맨'설득 작업과 함께 전국을 순회하는 토론회 등의 여론전을 계획하고 있다지만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이 '농협은 농민에게'라는 모토로 제기한 농협개혁론이 국회에서 불씨를 살릴 수 있을지,반발에 부딪쳐 흐지부지 꺼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