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수동에 자리 잡고 있는 케이투코리아 빌딩 1층 현관에는 창업주 정동남 회장(2002년 작고)의 흉상이 있다. 2남3녀 중 장남으로 2대 경영자인 정영훈 대표(40)는 매일 출근하면서 한참 동안 흉상 앞에 선 채 선친과 눈을 맞춘다.

"아버지께 누가 되지 않게 회사를 보란 듯이 키우겠습니다. " 아버지 임종을 제대로 못 지켜 가슴 한 편에 늘 죄송함을 지니고 있는 정 대표의 다짐이다.

정 대표는 부친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지난해 2000억원의 매출을 올려 경영 책임을 맡은 지 6년 만에 매출액을 5배로 성장시켰다. 현재 노스페이스 코오롱스포츠와 국내 아웃도어(등산용품) 업계 빅3로 자웅을 겨루고 있다.

이 회사는 업계의 관행이던 멀티숍 위탁 판매를 자체 브랜드 숍으로 전환하고 '짝퉁'(유사 상품)과 질긴 전쟁을 치렀으며 대중매체 광고를 시작하는 등 끊임없는 혁신에 나섰다. 현재 전국 200여개 매장에서 매년 등산화 등산의류 등 5개 품목을 400만점 넘게 팔고 있다.

사실 케이투코리아의 시작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당초 충남 서천에서 농사를 짓던 정 회장은 가족 생계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1968년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 마포에 가게가 딸린 방 한 칸을 얻어 과자 라면 등을 파는 구멍가게를 냈다. 하지만 기존 가게에 밀려 문을 닫았다.

연탄 판매를 시작했지만 이 역시 단골을 잡지 못해 접고 말았다. 1년 만에 중랑천 부근 판자촌으로 옮겨 가는 신세가 됐다.

생활이 막막했던 정 회장이 구두 수선 칼을 잡은 것도 이때다. 지인의 도움으로 구두 수선일을 배운 정 회장은 1주일 뒤 리어카를 장만해 도구를 싣고 집 근처에서 좌판을 벌였다.

처음에는 칼질이 서툴러 멀쩡한 새 구두를 찢어 손님한테 멱살이 잡혔을 정도로 수도 없이 혼났다. 악착같이 기술을 배우며 일한 덕에 얼마 뒤 무교동에 작은 구둣방을 낼 수 있었고 직원을 두고 구두를 직접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정 회장이 등산화로 품목을 바꾼 때는 1972년.을지로(당시 3 · 1빌딩 옆)에 미싱 3대와 기술자 6명을 두고 한국특수제화를 설립했다. 당시 일본에서 불고 있던 등산 열풍이 한국에도 곧 상륙할 것으로 예상,등산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만해도 등산화는 수입품이거나 군용 워커였는데 발 길이는 짧고 볼은 넓은 한국인의 발 특성에 맞지 않아 불편한 구석이 많았다. 정 회장은 시중에 있던 외국의 유명한 등산화를 모조리 구입한 뒤 뜯어 보고 꿰매 보면서 한국형 등산화 개발에 매달렸다.

정 대표는 "아버지는 한 달 평균 세 켤레씩 생전에 1000켤레 넘는 등산화를 '해부'했다는 말씀을 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이런 노력 끝에 1972년 첫 작품으로 등산화 '로바'를 내놓으면서 성장세를 탔다. 등산화 'K2' 브랜드는 1978년 론칭했다.

정 회장은 회사가 커 나가자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장남을 1997년 7월 불러들였다. 정 대표는 "입사하자마자 외환위기가 닥쳐 '부도 공포'부터 배웠다"며 "당시의 경험이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루 평균 1건씩 받은 어음이 부도 나 총 20억원 넘게 손실을 입었다. 등산화도 하루 판매량이 800켤레에서 20~30켤레로 뚝 떨어졌다. 이렇게 되자 1998년 초 등산화 공장을 닫고 등산의류 사업도 사실상 접어 매출이 40억원대로 반토막 났다.

이런 상황에 건설 현장에서 주로 신는 안전화가 그나마 팔려 회사를 지탱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 해 가을 구조조정 여파로 등산 인구가 늘기 시작하면서 등산화 공장을 다시 돌려 등산 의류도 팔게 됐다.

정 대표는 북한산 등반 중 사고로 아버지가 사망한 2002년 6월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정 대표는 2000년부터 전무로 업무를 총괄하면서 준비해 왔던 토털 아웃도어 업체로의 탈바꿈을 이듬해부터 실행에 옮겼다.

정 대표는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과감한 경영 혁신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우선 주로 여러 브랜드를 한꺼번에 파는 멀티숍 위탁 판매를 그만두고 'K2' 브랜드 제품만 취급하는 위탁운영 방식의 브랜드 숍으로 바꿨으며 중간 판매상인 총판을 없앴다. TV · 라디오 · 버스 광고도 시작했다. 경쟁 업체들 역시 2,3년 뒤 케이투코리아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9월 대법원 상표무효 소송에서 10여개 짝퉁 업체를 상대로 승소,짝퉁이 없는 브랜드로 재탄생시킬 수 있었다. 5년간 지리하게 짝퉁과의 전쟁을 치른통에 무려 100억원을 지출해야 했다.

정 대표는 "소송으로 인해 오히려 짝퉁 많은 브랜드로 비쳐져 이미지만 더 나빠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며 "하지만 경영 승계 뒤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털어놨다.

이 회사는 2006년 론칭한 프랑스 아웃도어 브랜드 '아이더(Eider)'의 매장 수를 2011년까지 150개 이상으로 늘린다는 전략이다. 인도 카라코람 산맥에 있는 K2봉(8611m)은 에베레스트 산(8848m)에 이어 세계 두 번째의 고봉이다. 정 대표는 "열심히 일하다 보면 언젠가는 K2봉 만큼 높아져 있는 케이투코리아의 모습을 보게 되지 않겠느냐"며 "제가 아버지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3대,4대에서 이룰 수 있도록 탄탄한 토대를 마련해 놓겠다"고 강조했다.

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