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한 생명 짓밟은 중죄는 심판 받아야



또다시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현재 군포 실종 여대생과 부녀자들을 연쇄 살해한 강호순에 대한 경찰조사가 진행 중이다.



유영철 사건,정남규 사건 등 한 해거리로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이들 연쇄 살인범에게는 대부분 사형이 선고됐다.



우리나라의 사형수는 현재까지 58명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사형 집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07년 12월 30일,우리나라는 국제 엠네스티가 분류하는 실질적 사형 폐지국이 되었다.



일각에서는 사형제도가 무의미하기 때문에 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형제도는 사회 안정의 측면에서 볼 때 필수적이다.



일벌백계(一罰百戒)라는 말이 있다.



살인은 인간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최악의 범죄다.



따라서 본보기를 보여줌으로써 재발의 가능성을 뿌리째 뽑을 필요가 있다.



극악한 범죄에 대해 사형 집행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에 인식시켜 경각심을 일깨워줘야 한다.

강호순은 특정한 범행 동기도 없이 마구잡이로 살인행위를 즐겼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른바 '쾌락추구'형 범죄 유형으로 이에 속하는 범죄자들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 경우 무기징역을 통해 뉘우칠 시간을 주는 것도 지나친 관용일 뿐이다.



범죄 사실이 확실하며 죄질이 나쁜 경우에는 즉각 사형이 선고돼야 한다.



그것이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도 최소한의 위안이 될 것이다.



더구나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비합리적이다.



사형수를 무기징역으로 전환할 경우 이들을 관리하는 데 연간 약 160만원이 소요된다.



또한 불필요하게 관리 인력을 늘리고,수감 공간을 확보해야만 한다.



이는 혈세의 낭비다.



국민 복지에 쓰여야 할 돈이 중범죄자 수용에 허비되는 것이다.

독일의 법철학자 라드부르흐에 따르면 법의 3요소는 정의 · 합목적성 · 법적 안정성으로 정의된다.



법은 최소한의 정의를 지키고,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한 보루다.



우리는 범죄에 대해 책임을 묻고,이에 합당한 벌을 내려야 한다.



사형제도는 생명을 경시한 살인범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다.



타인의 생명을 빼앗은 죄는 무엇으로도 씻을 수 없다.



따라서 범죄자의 생명권은 법 앞에서 제한될 수 있다.



이는 타인의 생명을 짓밟은 데 대한 대가다.



피해자의 생명권은 살인범의 생명권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11년 동안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형제도는 폐지되지 않았다.



이는 사형제도가 정의 구현에 어느 정도 기여하기 때문이다.



사형은 인류가 만든 가장 오래된 법이다.



역사를 넘어 현재까지도 사형제도가 이어져온 것은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은석 생글기자(고양 능곡고2) dldmstjr16@hanmail.net



생명은 인간이 손대선 안될 천부적 권리



1997년 12월 30일은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날이다.



국제 엠네스티는 대한민국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최근 이명박 정부의 법질서 확립과 연쇄살인범 강호순을 둘러싸고 사형제도에 대한 논의가 재개되고 있다.



사형 제도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사형 집행을 통해 범죄 예방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국제연합은 1998년에서 2002년까지 사형제도와 살인율의 관계를 조사했으나 둘의 상관관계를 밝혀내는 데 실패했다.



또한 중국은 사형의 빈도수가 가장 높음에도 불구하고 범죄율이 높은 국가다.



결국 사형제도가 범죄 예방에 도움을 준다는 생각은 막연한 추측에 불과하다.



검증되지 않은 사실로 제도를 결정하는 것은 합리적 태도라고 볼 수 없다.

또한 사형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제도다.



모든 인간의 생명은 하늘이 부여한 가장 존귀한 권리로 이는 비교형량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비록 그 생명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의 생명이라고 할지라도 생명의 가치를 인간이 계측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탈리아의 계몽 사상가인 베카리아가 말했듯,인간은 생명에 대한 권리를 주권자에게 예탁한 바 없다.



각 개인이 맡기지 않은 권리를 국가가 빼앗는 것은 인간이 지닌 존엄함을 침해하는 행위다.

더 나아가 사회가 범죄자에게 형벌을 내리는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힌 자에게 보복을 가하는 것은 함무라비 법전 등 고대에나 존재하는 제도다.



현대의 형벌은 박애와 과학의 방향으로 발달하고 있으며 그 목적은 범죄자의 교화에 있다.

언론은 유영철, 강호순 등 연쇄 살인범들을 '사이코패스'라 칭하고 있다.



이들이 '사이코패스'가 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경쟁'만을 강조하고 인간을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 현대 사회의 냉정함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정신적 아노미를 겪은 사람들은 범죄자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는 한때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그를 교화시켜 다시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있다.



사형 제도는 인간의 교화 가능성을 무시하는 행위인 동시에 사회가 개인에게만 범죄의 원인을 떠넘기는 결과밖에 낳지 않는다.

인권은 현대 사회가 가장 중시하는 가치며,그 근원은 생명에 있다.



인도주의에 역행하는 사형제도는 시대적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악법에 지나지 않는다.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돼 인권 국가로 발돋움하는 이때,인권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전효빈 생글기자(전주 상산고 1년) bingo78@naver.com




살인자에게도 인권을 인정해야 하나요?

피의자의 생명을 앗아간다는 인권 문제로 전 세계적인 '사형제도 폐지'의 물결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도 이에 따라 지난 십수년간 사형 집행을 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사형제도는 유명무실해졌다.



하지만 그동안 신창원 사건,유영철 사건 등 사회를 불안케 하는 섬뜩한 살인사건이 종종 발생했다.



최근에도 부녀자 7명을 살해한 '강호순 사건'은 사회를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다.



때마침 이번 사건과 관련해 사형제도 부활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사형제도가 갖는 여러 문제점과 사형제도 폐지 이후의 대형 살인사건들로 미루어 볼 때,흉악범을 우리 사회에 그대로 두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형제도에는 기본적으로 인권의 문제가 개입된다.



대한민국 헌법 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기본권이 명시돼 있다.



흉악범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생명권 보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법의 존재는 사회의 안정과 질서유지를 목적으로 한다.



또한 '국민 권리는 국가안전보장과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우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의 헌법 37조 2항에서 살인범 사형의 법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범죄 사건을 보도하면 으레 '모방 범죄'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게 마련이다.



사형제도가 부활되면 살인사건 같은 중대 범죄의 모방 가능성을 줄일 수 있고 처벌에 대한 경각심 또한 고취시킬 수 있다.



범죄 예방의 차원에서 봐도 사형제도의 부활은 필요하다.

사형제도는 정치 권력에 의해 악용될 수 있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사형 집행을 민사 사건으로 제한하고 연쇄 살인과 같은 극악한 범죄 등에만 적용하면 권력 남용에 의한 살인 집행은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정치적 악용 외에도 오판의 결과인 '법정 살인'의 가능성 또한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증거 제일주의'에 따라 과학적 수사에 의해 범죄를 밝혀내고 공정한 법의 심판이 이뤄진다면 억울하게 사형선고를 받는 피의자는 사라질 것이다.



사형제도의 허점을 보완할 장치들을 마련한다면 사형제도의 부활은 흉악한 범죄로부터 국민들의 생명을 지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이유승 생글기자 (광덕고 3년) milk1404@hanmail.net



범죄예방 효과보다 윤리적 결함 더 커


사형제도는 인간에게 숨겨진 잔인성의 공공연한 표출이다.



우리는 사형 제도를 좀 더 날카롭고 이성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합리성이 결여된 사형집행은 중세의 마녀사냥과 조금도 다름없을 테니까.



먼저 윤리·교육적 측면에서 바라보자.



사형제도 아래에서 범죄자는 살 권리를 박탈당한다.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기회조차 빼앗긴다.



또한 오판의 가능성을 무시하고 인간이 만든 완벽하지 않은 제도에 의해 피의자의 생명권을 박탈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사형제도의 존속과 집행은 교육적 차원에서도 좋지 않다.



범죄를 사형으로 처벌한다면 대중은 점차 사형을 사소한 것으로 인식하게 돼 되레 생명 경시 풍조에 물들 것이다.



또한 범죄자를 사형으로 몰아가기 위한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대중의 냉정함과 잔혹함은 사회를 더욱 황폐하게 만들 것이다.

사형제도는 윤리적 결함을 뛰어넘을 만큼 강력한 범죄예방 효과를 가지고 있을까?



다른나라의 사례를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미국의 경우 사형을 폐지한 주들과 유지하는 주들의 범죄율 조사에서 사형제 폐지 주들의 범죄율이 오히려 낮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또한 1988,2002년 유엔의 연구에서도 사형제도와 범죄율의 상관관계는 미미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연쇄 살인으로 검거된 강호순을 사형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극악무도한 범죄는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흉악범이라고 해서 무조건 사형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올바른 해결책이라고 볼 수 없다.



사이코패스 범죄는 몇 사람을 '본보기'로 사형시킨다고 해서 근절되는 것이 아니다.

사이코패스 범죄가 일어나는 현상은 현대문명사회 내부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사형제도는 그것이 만일 범죄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하더라도 용납될 수 없는 비윤리적 제도다.



범죄인을 사형시킴으로써 썩은 고름을 덮을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이 모두 동참하는 인간성 회복운동으로 고름을 짜내는 것이 더 절실하다.

나수정 생글기자( 부산국제외국어고2학년) crystal24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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