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위 64도의 레이캬비크는 세계의 수도중 최북단 도시다. 온천도 유명하지만 오로라 관광이 더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북극권 특유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인구 10만명을 조금 넘는 레이캬비크가 아이슬란드의 수도다.

유럽의 오지인 레이캬비크가 세계적인 주목을 끈 것은 지난 1986년 레이건 · 고르바초프 회담때였던 것 같다. 미 · 소(美蘇)의 두 정상은 그보다 1년 전 제네바에서 양국 수도를 오가는 군축회담을 갖자고 했는데,결국 레이캬비크를 회담지로 택했다. 레이캬비크 회담은 베를린장벽 붕괴,냉전체제의 종언으로 이어지면서 세계사를 바꾼 주요한 계기로 평가된다.

지난해 하반기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 이후 미국 바깥에서 제일 먼저 '뉴스메이커'로 부각했던 국가가 아이슬란드였다. 며칠 새 환율이 폭등하고 주가는 반의반 토막 아래로 폭락하더니 강소부국의 대표주자로 알려졌던 이 나라의 3대 시중은행이 모두 국유화된다는 외신이 속속 전해졌다. 화이트칼라의 대명사격인 이 나라 은행원들이 그들 조상이 했던 것처럼 북해의 어부로 변신한다는 뉴스도 바로 이어졌다. 연전에 레이캬비크에 들렀을 때 시내택시에서도 사용되는 신용카드,황량한 북극권 환경과는 부조화를 이룬다 싶을 정도로 화려한 형형색색의 깨끗한 주택들이 인상적이었다. 돌아보면 이게 모두 거품위에 쌓아올린 성이었나 싶다.

최근에는 정부까지 무너졌다. 잇단 반정부 시위로 아이슬란드의 집권 연립정부가 붕괴되고 총리는 사직했다. 물가상승과 치솟는 실업률에 항의하는 주민들이 프라이팬과 냄비를 두들기며 민생 시위를 벌였다 해서 '프라이팬 혁명'이란 말까지 나온 게 아이슬란드 사태였다. 금융위기로 정권이 무너진 첫 사례라는 자랑스럽지 못한 기록도 남겼다. 개방과 투명성에서 모범국으로 꼽혔고 세계 최고수준의 소득까지 자랑했던 금융 부국이 경제난으로 국가부도 지경에 정부가 파산된 것이다.

'하부구조와 상부구조'라는 등의 거창한 이론을 들지 않더라도 국가가 유지 · 발전하는데 경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실례다. 아이슬란드만이 아니다.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그리스 우크라이나 등 상황이 유사한 나라들이 적지 않다. 모든 집권세력이 경제살리기에 매진하는 또 하나의 현실적인 이유라 볼수 있겠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