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답답해서 어쩔 줄 모른다. 언제쯤 이 극심한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게 될까. 벗어날 수는 있을까. 원화 가치는 언제 얼마까지 회복될 것인가. 집값은 어떻게 되려나. 다시 오를까. 더 떨어질까. 너나 할 것 없이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지만 어느 누구도 확실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우리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어렵다 보니 대기업조차 경영계획을 세우기 어렵다는 마당이다. 결국 삼성 등 대다수 기업이 시나리오 경영을 통해 이 난국을 돌파할 작정이라고 한다. 한 치 앞도 안보이는 불확실성에 대비,월별 분기별 시나리오를 구성해 대응한다는 것이다.

시나리오 경영이란 장차 발생 가능한 사태를 몇 가지 다른 시나리오로 구성,각각의 대비책을 마련하는 방법.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공군에서 사용한 적군의 동향 파악 내지 예측 기법을 전쟁 후 기업 경영에 접목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는 정유회사 로열 더치 셸(이하 셸)이 꼽힌다. 셸은 1973년과 83년의 유가 파동을 모두 예견,대박을 냈다. 첫 쇼크를 예측한 건 런던지사에 근무하던 피에르 왁.왁은 미국의 석유비축량 급감,석유수출국기구(OPEC) 출범 등 시장의 변화를 유심히 관찰,늦어도 74년 이전에 유가가 오르리라 확신했다. 10년 후인 83년 셸은 국제 정치경제 상황에 주목,소련 붕괴에 따른 유가 하락을 예상한 피터 슈워츠의 시나리오를 받아들여 다시 한번 대히트를 쳤다.

20세기 경영의 핵심이 리스크 관리였다면 21세기 경영의 중심은 '불확실성과 의혹 관리'라고 한다. 그만큼 불안한 요소는 많고 판단은 어렵다는 얘기다. 위기란 일단 닥치고 나면 좀처럼 극복하기 힘들다. 미래 예측 및 대응 시나리오는 일이 터진 다음이 아니라 평소에 마련돼야 한다.

기업만 그러하랴.개인과 가정,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생각의 속도로 변한다는 세상에선 아무 것도 보장되지 않는다. 잘 나갈 때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시나리오 경영의 기본은 관찰과 경청이라고 한다. 왁은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 오일쇼크를 알아챈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이 알고 있듯 마술사는 텅빈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는 게 아니다. 토끼는 모자 안 혹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기업 경영도 같다. 예측할 수 없는 환경은 없다. 변화는 어떤 형태로든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