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금융위기가 실물위기로 전이되고 있던 작년 11월 워싱턴에서는 G20 금융정상회의가 열렸다. 여기서 이명박 대통령은 앞으로 예상되는 각국의 보호무역주의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무역 · 투자와 관련된 새로운 장벽을 만들지 않는 동결(stand-still) 선언을 주창하고 각국 정상들은 이를 주요 이슈로 채택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개월 남짓 흐른 지금 미국을 필두로 많은 나라들이 국제무역기구(WTO)에 위배될 수 있는 관세 인상,정부 보조금 지급을 비롯해 위반 여부가 애매한 각종 회색지대(gray area) 장치 등으로 회원국 간 통상분쟁이나 제소 움직임마저 나타나고 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미국과 유럽 산업국가들 사이의 무차별적 관세인상으로 인한 무역전쟁은 후생과 성장의 후퇴를 가져오고 급기야 세계대전의 간접적 원인을 제공했다는 역사적 학습효과로 인해 근본적인 WTO체제는 큰 지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제회생에 있어서 국가중심주의(statism)의 경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무역의존도가 상위권이고 수출이 성장과 고용의 주축인 우리로서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국은 현재의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레이스를 시작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정부정책 집행의 효율성 측면에서 유리한 점이 있고 세계 경제와 통화의 리더인 미국은 기존의 패권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오바마 신정부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리더십의 유리한 점이 있다. 일본과 유럽연합은 어려움 속에서도 내수(블록) 시장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우리보다는 안정적인 규모의 경제권이며 그래서 보다 유리한 입장이다.

작년 8500억달러 규모의 무역규모에 이 중 절반이 수출인 한국이 갈 수 있는 길은 자명하다. 물론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중국이나 일본보다 한국이 현재의 경제 위기를 빨리 벗어날 것이라는 로저스 홀딩스 CEO인 짐 로저스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번 위기는 지난 외환위기 때와 같이 우리가 노력만 한다면 오히려 기회로 만들고,승자가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첫째 선택과 집중이 기업의 키워드가 돼야 한다. 지난번 경험했듯이 업계질서가 재편되고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에서 한정된 기업의 역량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제품의 경쟁력과 재무구조를 개선한(deleverage) 기업들은 나중에 세계적 다국적 기업이 됐다. 우리는 이런 경험과 노하우 면에서 타국보다 앞서 있다. LCD,반도체,조선 등의 세계 1위 제품들은 호경기시 승자독식(winner takes all) 수준의 효자산업으로 보답할 것이다. 둘째 국가적 차원에서는 오는 4월에 열리는 런던 G20 정상회의에서 공동의장국 지위를 십분 활용해 세계무역 자유화에 역행하는 어떠한 행태도 나타날 수 없도록 강력한 기속력을 가진 제2의 동결선언 및 후속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현재 진행중인 각종 FTA 협상 건은 우선순위를 정하되 가속화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이미 체결된 한 · 미FTA와 기타 후속 법안을 조속히 국회에서 마무리짓는 것이 실리적으로나 전략적으로 매우 절실하다.

지난달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무려 마이너스 32.8%나 추락했다. 물론 주요국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전 세계적 교역 급감과 경제국수주의 우려 속에서 한국이 또 한번 위기 탈출의 승리자요 모범국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권을 비롯한 모든 이해 집단과 국민들이 비록 저마다의 생각과 이해가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지금은 목소리를 낮추고 다가오는 외부 파고를 이겨내기 위해 하나로 지혜를 모을 때다.

/한국무역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