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역사를 체험하고 과학문화를 맛볼 수 있는 인프라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자연사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이다. 공룡 뼈 등 동 · 식물 표본과 암석 광물을 통해 지구 역사와 생명체 진화과정,생태계 변화 등을 일목요연하게 접할 수 있는 자연사 연구자료의 보고인 셈이다. 인간이 자연환경과 더불어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배움의 터전이자 멸종 위기에 처한 생물과 종자 확보를 위한 자연유산의 보전처이기도 하다.

프랑스 등 주요국들이 18세기부터 자연사박물관 건립에 나섰던 것도 바로 그러한 연유에서일 게다. 프랑스는 1793년에 왕실전용 식물원을 확장해 국립자연사박물관을 설립했고,영국은 1882년 대영박물관으로부터 런던자연사박물관을 따로 떼내 문을 열었다. 미국에서도 1869년 뉴욕 미국자연사박물관이 선보인 이래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일리노이주 필드자연사박물관 등 1100여 곳이 운영 중이다.

이 뿐만 아니다. 중국 또한 자연과학박물관협회에 등록된 박물관만 3000곳에 육박하고 있고,최근에는 상하이에 초대형 국립중앙자연사박물관을 세우고 있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국립자연사박물관이 한 곳도 없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없는 유일한 나라라는 불명예까지 뒤집어 쓰고 있는 마당이다. 정부가 그 동안 외환위기 등으로 인해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 계획을 다시 추진하고 나선 것도 그런 배경에서일 것임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수년에 걸쳐 수천억원이 투입되는 초대형 사업인데다 타당성 검토과정에서 또 다시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흔히 자연사박물관은 국민이 자연을 내다보는 창이라고들 한다. 더구나 과학기술과 녹색 강국을 국정 아젠다로 내세운 우리나라가 반듯한 자연사박물관 한 곳 없다는 사실은 낯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이번 만큼은 우리나라에서도 스미스소니언에 버금가는 국립자연사박물관이 탄생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아울러 박물관 개관 시점도 가능한 한 앞당길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김경식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