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이 양보한 거 아냐?"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19일 여의도로 돌아온 날 금융감독원의 한 간부가 지나가는 말로 내뱉은 말이다. 아무리 상급기관이라고 하지만 엄연히 세입자인 금융위가 로열층인 11~13층을 싹 가져가면서 허리가 잘린 데다 사무실이 부족해지면서 금감원 일부 부서는 인근 빌딩으로 쫓겨나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금융위 내선번호가 9번으로 시작하면서 외부전화 접속번호도 0번으로 바뀌었다. 외부통화를 위해 습관적으로 9번을 먼저 눌렀던 금감원 직원들은 "상전이 바뀌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구만"이라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된 금융위 · 금감원의 어색한 재결합은 진동수 신임 금융위원장의 취임과 함께 안정된 분위기를 잡아가고 있다. 당초 우려했던 두 기관의 불협화음이나 금융위의 여의도 재입성을 계기로 제기됐던 금융감독기구의 단일화 개편론도 일단 잠복했다.

진 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금감원과의 합심과 팀워크를 강조한 데다 김종창 금감원장의 낮은 처신도 분위기를 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진 위원장도 행시 선배인 김 원장을 예우하면서 화학적 결합을 이끌고 있다. 금융위 출신인 김용환 금감원 수석부원장의 조율도 돋보인다는 평가다. 금융위의 한 간부는 "사무실 이전 과정에서 금감원이 많은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양보해 빨리 적응하게 됐다"고 말했다.

가장 큰 성과는 금융당국의 목소리가 통일되면서 시장의 혼선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국무회의나 청와대 서별관회의 등 정부 내에서 금융당국의 입장표명이 진 위원장으로 일원화된 것이 단적인 예다. 한때 두 기관이 경쟁적으로 언론플레이에 나서면서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수면 아래로 잠복한 듯한 조직 갈등이 언제든지 다시 불거져 머리(금융위)와 몸통(금감원)이 따로 움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기업구조조정,은행자본확충 같은 주요 현안을 둘러싼 이해갈등 외에도 정보를 쥔 금감원과 정책주도권을 갖고 있는 금융위의 이해다툼은 작은 불쏘시개에도 대형 화재로 비화될 만큼 휘발성이 크다. 조직이기주의는 초기에는 늘 고개를 숙인다. 진 위원장의 리더십은 아직 시험대에 오르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