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증시는 폭락하고 심각한 불황이 닥칠 것이다. " 대공황 직전인 1929년 9월5일 기업가이자 이코노미스트인 로저 밥슨은 전미경영자회의 총회에서 이같이 역설했다. 후일 '대공황의 예언자'로 알려진 그의 말대로 10월25~26일 이틀 동안 뉴욕 증시는 30% 추락했다. 밥슨은 현재 미국 정부가 공식적인 경기국면을 판단하는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경기동향지수 전신인 '밥슨지수'를 개발한 인물이기도 하다. 밥슨지수의 기초는 소위 '경기면적설'로,'모든 작용은 항상 같은 크기의 반작용을 초래한다'는 역학의 기본법칙을 원용했다. 즉 정상 수준 이상의 호황기 후엔 정상 수준 이하의 불황기가 이어지며,불황기의 기간 및 강도는 호황기의 기간 및 강도와 같다는 것이다.

꼭 밥슨 이론이 아니더라도 경제위기가 길어질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금융시스템 마비가 초래한 실물 불황은 이제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다보스포럼에 모인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들도 잇달아 내년 이후에나 세계경제가 회복될 것이란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요즘 미 월가에서 회자되는 신조어 가운데 'USSRA'란 단어가 있다. 아메리카합중국(USA)과 옛 소련(USSR)을 합친 '아메리카사회주의합중국'이란 뜻이다. 불황이 본격화되면서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정치 우위의 현상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USSRA'가 의미하는 것은 바로 '큰 정부'다. 정부가 은행과 기업에 공적자금을 투입,사실상 국유화하고 시장에 강도높게 개입하는 걸 가리킨다. 실제로 미국은 물론 캐나다 영국 독일 러시아 일본 등 세계 각국은 자동차를 비롯한 자국산업 구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또 금융사들을 엄격히 규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서 나부터 살고보자식의 보호무역주의 바람이 거세며,물밑으로는 기축통화를 둘러싼 정치적 암투도 치열하다. 미국 일극(一極)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다극(多極)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작은 정부와 규제완화로 대표되는 레이거노믹스의 '시장방임' 코스트(비용)는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하지만 정치의 시대에 우려되는 코스트도 만만치 않다. 첫째는 '민주주의의 위기','시장의 위기'다. 시장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게 대표적이다. 이탈리아의 파시즘이나 독일의 나치즘이 탄생한 것은 바로 극단세력이 경제위기 바람을 업고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또하나는 정부의 시장개입과 규제에서 발생하는 코스트 문제다. 미 부시 정부의 리먼브러더스 파산 결정이 1조달러의 손실을 야기한 것처럼 정부 개입비용이 방임비용보다 훨씬 더 클 수 있다. 야나가와 노리유키 도쿄대 교수는 따라서 "보다 세심한 경제정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경제위기 여파로 아이슬란드는 결국 연립정부가 붕괴됐다. 자본주의 종주국인 영국의 브라운 정권도 풍전등화다.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틱 국가와 슬로바키아 그리스 등도 금융위기로 인해 정치적 위험이 증대되는 나라로 꼽힌다. 프랑스 러시아 중국 일본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정치적 리더십이 중요하지 않은 때가 없었지만 요즘 같은 위기의 시기엔 특히 그렇다. 과연 한국 정치 지도자들의 경쟁력은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