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인생의 전기가 된 독서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필자에게는 《삼국지》가 그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철학 책이나 문학 책이었으면 좀 더 멋있어 보이겠지만 《삼국지》를 양보할 생각은 없다.

사실 필자는 대학생이 돼서야 《삼국지》를 접하게 되었다. 드넓은 중원을 무대로 난세군웅들이 각축하는 장대하고 호쾌한 묘사가 넘치는 《삼국지》를 읽고 받았던 그 충격과 경이로움은 막 성년의 길에 들어선 필자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이후 계절이 변할 때마다 다시 꺼내 읽게 되는 인생의 지침서이자 애독서가 되었다.

이처럼 《삼국지》에 빠지다 보니 《삼국지》 이후 역사에 대해 관심이 생겼고,어느날 우연히 그 후의 역사가 기록된 책을 보고 이를 탐독했다. 《삼국지》에서 가장 큰 위세를 자랑하던 위나라는 조조의 죽음 이후 사마의에 의해 멸망하고 진나라로 이어진다. 하지만 진나라 역시 오래 가지 못하고 팔왕(八王)의 난으로 멸망하게 된다.

위나라와 진나라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필자는 문득 대물림이란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늘 생각한다. 조조는 왕권의 영속을 위해 주변 왕족의 힘을 빼는 정책을 썼으나 결국 그것이 탈이 되어 사마의에게 나라를 빼앗긴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은 사마의는 반대로 주변 왕족에게 힘을 실어 왕권 유지를 꾀했지만 역시 이것이 팔왕의 난을 초래하는 화근이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대물림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인 듯하다.

이는 오늘날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루가 다르게 불확실성이 높아가는 오늘날의 경영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불과 20년 전 우리나라 50대 기업 중 아직까지 살아남은 기업이 21개에 불과하고,그 가운데 13개 기업만이 꾸준히 5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린 것만 봐도 그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유난히 장수 기업이 많은 일본의 경우는 매우 흥미롭다. 일본의 대표적 기업인 미쓰이만 봐도 에도시대 최대 호상(豪商)이었던 미쓰이가의 포목점에서 시작하여 3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일본 특유의 유연하고 개방적인 양자 제도와 조직을 중시하는 문화가 큰 역할을 했다. 친척은 물론 남이라도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기꺼이 양자로 받아들여 성씨를 물려 주어 가업을 잇게 했고,선대에서 피땀 흘려 일군 가업을 절대 망하게 할 수 없다는 책임감이 투철했다.

그것이 한 국가이든 아니면 조그마한 가업이든 무언가를 물려받아 성공적으로 발전시키는 일엔 특별한 왕도도 정답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뿌리가 깊을수록 새싹을 더욱 힘차게 밀어 올리는 법.무엇보다 선대의 열정과 노력을 잊지 않고 고스란히 이어받는다면 우리나라에도 몇백 년 된 곰탕 국물을 맛볼 수 있는 집들을 비롯 국민에게 사랑받는 장수 기업들이 부쩍 늘어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