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양 포스코 신임 회장 후보는 작년 11월 포스코건설 사장으로 옮기자마자 팀장급 직원들에게 두 권의 책을 선물했다. 하나는 일본 컨설턴트 엔도 이사오가 쓴 '미에루카(見える化) 경영전략'.'잃어버린 10년'을 이겨낸 일본 기업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모은 책이다. 두 번째는 '도요타 제품 개발의 비밀'.미시간대의 제프리 라이커 교수가 도요타의 생존비법을 분석했다. 저자는 서로 다르지만 두 책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동일하다. 바로 '혁신'이다.

30일 아침 정 회장 후보를 서울 역삼동 포스코건설 사옥에서 만났다. 포스코의 '새 주인'으로 낙점을 받은 뒤 첫 출근길이었다. 아직 '후보자 신분'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 극히 말을 아꼈다. 대부분의 질문에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하겠다"는 대답만 반복했다. 회장직 인수인계 과정에 대해서는 "이구택 회장과 평소와 다름없이 자주 만나고 있다"고 에둘러 얘기했다. "30여년 포스코에 계셨으니 따로 준비하실 일은 없겠다"고 묻자,"전혀 그렇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포스코건설 직원들을 붙잡고 물었다. 그리고 포스코건설 사장으로 근무한 정 회장 후보의 두 달여를 더듬었다. 직원들은 하나같이 가장 인상 깊었던 일로 '혁신활동'을 꼽았다. 정 회장 후보는 작년 11월 포스코건설 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미에루카'라는 말을 줄기차게 강조했다고 한다. '미에루카'는 도요타의 생산현장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로 '문제점을 보이게 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다양한 문제를 숨김없이 드러내야만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정 회장 후보가 최근 건설전문 잡지에 기고한 글에도 '미에루카'는 여러 번 등장한다. 그는 이 기고문에서 "모든 잘못을 공개하고 나쁜 정보를 여과없이 드러내는 기업은 자율적인 문제 해결능력을 지니게 되고 예기치 못한 불상사를 예방할 수 있는 최적의 위기관리가 가능하다. 또 원하는 정보가 적절한 시점에 보이게 돼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 후보가 생각하는 '혁신'의 출발점은 '드러냄'에 있는 것이다.

정 회장 후보는 포스코건설 업무를 어느 정도 파악한 뒤부터 본격적인 혁신활동에 들어갔다. 대표적인 캠페인이 '비주얼 플래닝(VP=visual planning)'이다. VP는 직원들이 자신의 이름표가 붙은 게시판에 평상시 업무를 △계획 업무 △개선 업무 △돌발 업무 등으로 꼼꼼히 기재하는 것이다. 전 직원들의 하루 일과와 업무 부담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전광판인 셈이다.

정 회장 후보는 "VP활동은 항상 'J 커브'를 그린다"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VP활동은 예전에 하지 않던 일이 하나 더 부가된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업무효율이 오히려 떨어지지만 일정 시간 누적이 되면 효율이 급격하게 올라간다는 설명이다. 포스코건설 직원은 "개개인의 업무 기재방식을 일일이 수정해 줄 정도로 VP활동에 열성적이었다"고 말했다.

포스코 직원들의 머리에도 정 회장 후보는 '혁신 전도사'로 각인돼 있다. 그가 거쳐간 부서에는 어김없이 'VP 게시판'이 설치돼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포항과 광양의 제철소가 연간 1조원가량의 원가절감을 이뤄낼 수 있었던 원동력도 끊임없는 혁신 활동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직원들이 각자 개별적으로 아무리 줄이고 아껴봐야 한계가 있지만 서로 터놓고 업무를 공유하면 절감할 수 있는 부분이 몇 배로 늘어난다는 것이 정 회장 후보의 지론이다.

정 회장 후보는 다음달 27일 주주총회에서 포스코 수장으로 공식 선임되기 전까지 포스코건설과 포스코를 오가며 '두 집 살림'을 한다. 이 기간 동안 '포스트 이구택 체제'를 이끌어갈 키워드를 뽑아내야 한다. 포스코의 한 임원은 "정 회장 후보가 강조하는 혁신은 일하는 방식의 변화로 요약된다"며 "현재 포스코가 처한 위기를 극복해낼 경영전략도 혁신이라는 단어에서 도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상대적으로 딱딱하다는 평가를 받는 포스코 기업문화에도 변화가 일어날 공산이 크다. 정 회장 후보가 혁신활동의 성공을 담보하는 조건으로 강조하는 덕목이 '상호신뢰'와 '원활한 의사소통'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 기고문에서 "비록 나로 인해 발생한 문제라고 해도 상호협력을 통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성숙한 믿음이 있어야 회사가 발전한다"며 "원가절감과 같은 유형의 이익은 이런 무형의 자산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