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자동차 생산량을 자랑하는 도요타의 일본 내 공장에는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비정규직 근로자가 1만8200명 근무하고 있었다. 전체근로자 6만765명의 27%에 달하는 수치다. 이 중 기간제(계약직)가 9110명,파견직이 9000명이다. 나머지는 파트타이머(시간제 근로자)다. 고용보장을 최고의 경영철학으로 삼고 있는 도요타에 비정규직이 많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다. 지난해 5월 도쿄 본사에서 만난 도요타 인사노무 관계자는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인건비가 싸고 경기 변동에 따라 인력 수급을 쉽게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비정규직이 대량 해고되면서 "비정규직이 봉이냐"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비정규직의 싼 임금과 고용유연성은 지금껏 도요타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한 축을 담당해왔다.

고민거리였던 비정규직의 로열티(충성심)는 적정한 임금수준과 일정비율의 정규직 전환으로 해결했다. 기간제의 임금은 정규직 2년차에 맞춰져 있고 능력 있는 비정규직은 매년 10%씩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실제로 도요타는 2007년 1250명의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킨 데 이어 지난해에는 900여명을 또다시 정규직으로 돌렸다. 비정규직의 불만요인을 최소화시킨 것이다.

우리나라 노동현장의 고용실태는 어떤가. 요즘 잘나가는 대기업에서 기간제 근로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노조의 투쟁이 거칠어지면서 아예 기간제 채용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경우 파트타이머나 기간제로 주로 채우고 있는 백화점 업계도 비정규직을 꺼리긴 마찬가지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7월 전국 100여개 지점 매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계산원 5000명을 정규직원으로 근로자 신분(?)을 높여 분쟁의 불씨를 없애버렸다. 우리은행 국민은행 등 금융권과 많은 대기업들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얼핏 보면 우리 기업들이 도요타보다 양질의 일자리 확보에 더 신경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정규직을 전환하지 못하는 기업에선 아웃소싱이 늘고 있다. 계약직을 외주화로 돌리면서 터진 이랜드의 장기파업사태가 대표적이다. 현대자동차는 기간제 대신 사내 하청회사에 일감을 맡겨 고용유연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기간제는 줄고 용역은 늘고 있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기간제 근로자는 2006년 8월 현재 272만2000명에서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직후인 2007년 8월 253만1000명으로 감소한 뒤 지난해 8월에는 또다시 236만5000명으로 내려앉아 2년 동안 35만7000명이나 줄어들었다. 반면 용역 근로는 2006년 8월 49만9000명에서 지난해 8월에는 64만1000명으로 14만2000명이 불어났다. " 말 많고 탈 많은 기간제 근로자를 쓰느니 외주용역을 주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하다"는 경영자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와 여당은 엊그제 현행 2년인 기간제의 사용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의 비정규직법개정안을 2월 임시국회에 제출키로 합의했으나 노동계와 야당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도 노사가 한 발짝씩 양보해 기간제의 사용기간을 늘리는 대신 비정규직의 일정비율을 매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고 임금 수준을 높인다면 사회적 대타협도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