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 中과 덤핑 시비…자동차·철강 등 수입 규제 압박

[Global Issue] 경제 어려운데 나만 살고 보자?…세계 무역 보호장벽 높아진다
세계 무역시장이 연초부터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면서 여러 나라들이 앞다투어 자국 산업 보호책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서로 국익을 뺏기지 않겠다는 자국 우선주의가 결과적으로 국제 무역 질서를 파괴하는 상황에 이르지 않을지 불안과 우려를 높여놓고 있는 것이다.

경제가 나빠진 원인을 나라마다 서로 다른 나라 탓으로 돌리다 보면 결국 국제 질서도 흔들리게 된다는 점에서 결과가 주목된다.

글로벌 무역 갈등의 중심엔 역시 중국이 있다.

중국은 무역 총액이 급증하고 있는 데다 저가 소비재를 팔아 미국 유럽 등에서 벌어들이는 무역흑자도 엄청나게 많다.

그래서 무역을 둘러싼 갈등이 생기면 중국은 꼭 포함된다.

우리나라는 중국에서 흑자를 내고 있기 때문에 당장 문제는 없지만 중국 상품을 수입하는 대부분 나라들은 자기 나라 중소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중국의 수출품들에 대해 덤핑 판매 등 시비를 걸고 있다.

적정 가격에 물건을 팔지 않고 저가 후려치기 등으로 시장질서를 어지럽힌다는 것이다.

또 환율을 조작해 인위적으로 중국 물건 값을 끌어내리면서 다른 나라의 경쟁 기업을 공격하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일만 하더라도 EU는 지난해 2월27일 중국산 스크루와 볼트 제품에 대해 향후 5년간 7억5600만달러의 관세를 내라고 결정했다.

EU 집행위는 중국산 스크루와 볼트 등이 EU 시장에서 덤핑 판매되고 있다는 이탈리아 폰타나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들 제품 가격에 최고 85%의 관세를 물리기로 한 것이다.

관세를 더내면 당연히 물건 값이 그만큼 올라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중국산 제품이 시장에서 덜 팔리게 된다.

중국산 스크루와 볼트는 EU가 해외에서 사들이는 이 분야 제품의 무려 60%를 점유하고 있다.

더구나 중국산 제품의 시장점유율이 불과 1년 동안 17%에서 26%로 급등한 것이 빌미가 되었다.

실제로 중국 제품들이 너무 많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각국의 경쟁 기업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이들의 아우성을 각국 정부가 받아들이다 보니 국가 간 갈등으로 비화된다.

물론 중국도 앉아서 당할 수는 없다는 자세다.

중국은 EU가 오히려 부당한 보호무역을 강화하고 있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기로 했다.

중국 측은 중국산 제품의 시장점유율이 조금만 올라가면 덤핑의 올가미를 씌운다고 반발하고 있다.

야오젠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이 같은 불합리한 결정으로 중국 제조업체들의 피해도 막심하다"며 "EU 집행위 결정을 정밀 검토해 WTO에 제소하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덧붙였다.

사실 중국으로부터 물건을 싸게 수입하면 자국 소비자에게는 그만큼 이익이지만 대부분 나라들은 그래도 일단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보자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최근 수년 동안 크게 어려워진 것도 중국 상품들이 너무 많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고 보면 우리도 이런 갈등에서 예외는 아니다.

중국은 미국과도 갈등을 빚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중국이 환율을 조작하고 있다면서 이미 포문을 연 상태다.

미국과 중국의 환율 갈등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제품의 절반 이상은 중국에서 조립 과정을 거쳐 미국 등으로 수출되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이 갈등에 빠지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식으로 한국도 피해자가 되고 만다.

국제 무역은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 있다.

서로가 자기만 살겠다고 나서다 보면 모두가 물에 빠지고마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각 나라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내놓고 있는 각종 경기부양책도 문제다.

WTO는 각국의 잇단 구제금융 조치들이 불공정 교역을 초래해 무역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은행이나 자동차 산업에 대한 구제조치들이 보조금 지급 등을 금지한 WTO 규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오바마 정부가 한국산 자동차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것도 걱정할 만한 상황이다.

현대자동차가 미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미국 자동차 회사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데 미국 정부가 갑자기 GM이나 포드를 지원하고 나서면 현대자동차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이런 일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들이 선진국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인도는 철강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올렸고 에콰도르도 940개 품목에 대한 관세를 크게 높였다.

인도네시아가 수입 항구와 공항 수를 규제하기 시작한 것도 마찬가지다.

아예 공항과 항구를 줄여 물리적으로 수입을 못하게 하겠다는 식이다.

미국조차 이런 유치한 정책을 쓰고 있다.

흑인 대통령으로 세계의 찬사를 받았던 오바마 정부는 미국 내 산업 육성과 일자리 보호를 위해 소위 '바이 아메리카'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바이 아메리카' 정책은 US스틸과 뉴코 등 미국 철강회사들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추진하는 각종 사업에는 미국산 제품만 쓰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당장 한국 기업들도 적지 않은 피해를 보게 된다.

워낙 유치한 규제다 보니 미국 내에서도 이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제너럴일렉트릭(GE)과 캐터필러 등 미국의 주요 수출기업들은 이 조항이 자칫 다른 나라의 비슷한 보복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크게 반대하고 있다.

만일 미국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전부 바이 아메리카 식의 정책을 도입하게 되면 국제 무역은 사실상 붕괴될 가능성도 있다.

세계의 희망처럼 받아들여졌던 오바마가 세계의 절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영국은 논란이 많은 자국 자동차산업 육성을 위한 지원책을 내놨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피터 만델슨 영국 산업장관은 이날 의회에서 자동차 산업에 23억파운드(약 33억달러)를 지원키로 했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정부의 지원책은 구제금융이 아니라 미래 저탄소 경제를 위한 산업 재편 차원"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속셈은 뻔하다.

독일 정부도 글로벌 경기 침체로 타격을 입은 항공기업체 에어버스 지원을 위해 에어버스 구매 고객(항공사)에 대한 대출보증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프랑스도 에어버스 구매 기업에 대출보증 방식으로 최대 50억유로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경기 불황을 맞은 각국 정부가 허둥지둥대면서 나만 살고보자는 식의 어리석은 게임을 벌이는 상황이다.

이래저래 연초부터 국제 경제계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생글 독자 어려분, 조금 어려운 얘기였는데 끝까지 읽어주어서 고마워요.

하지만 우리가 꼭 알아두어야 할 내용이니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내게 메일 보내줘요.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