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 결정을 앞둔 쌍용자동차가 협력업체에 발행해준 어음 대금 결제가 어려워져 40여개 1차 전속 협력업체들이 무더기로 도산할 위기에 직면했다. 29일 933억원어치의 어음이 지급 만기를 맞게 되지만 법정관리 신청에 따라 쌍용차의 채권 · 채무 이행이 동결됐기 때문이다. 부품대금으로 받은 어음을 이미 은행에서 할인해 쓴 대부분의 협력업체들은 이날까지 빌린 돈을 갚지 못할 경우 대량 부도사태를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자금이 돌지 않으면 1차 협력사가 2차 협력사에,2차 협력사가 3차 협력사에 발행한 어음 대금 결제까지 어려워져 쌍용차 부품업체들이 '도미노식' 부도 사태에 빠져들 것이란 우려도 커졌다. 부품업체가 일부라도 도산할 경우 휴업 중인 쌍용차의 정상 조업도 어려워져 1300여개 협력사 전체에 파장이 예상된다.

◆쌍용차 부품사 40여곳 부도 위기

쌍용차 1차 협력업체 모임인 협동회의 최병훈 사무총장은 "쌍용차가 1 · 2 · 3차 부품사에 발행해준 어음 가운데 29일 만기가 도래하는 어음 규모는 총 933억원"이라며 "자금 여력이 있는 대기업 부품사 등은 자체적으로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겠지만 쌍용차 납품 비중이 높고 영세한 40여개 '전속업체'들은 부도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이 감당해야 할 어음 규모는 300억~500억원가량이며 고용 인원은 1만명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오유인 협동회 회장은 "대부분 협력사들이 받아놓은 어음을 이미 할인해 쓴 상태라 은행에 돈을 갚아야 하는 데다,쌍용차로부터 대금을 받아 다시 2차,3차 부품사에 발행한 어음 대금을 결제해주는 구조라 연쇄 부도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쌍용차와 거래하는 부품사는 1차 250여곳과 2 · 3차 협력업체를 포함해 총 1300여개로 알려졌다.

일부 협력업체의 부도로 부품 공급이 끊기면 다음 달 2일로 예정된 쌍용차의 정상 가동도 차질을 빚을 전망이라 부도 위기가 협력사 전체에 번질 우려도 커졌다. 최상진 쌍용차 상무는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상 회사 차원에서 임의로 어음을 변제할 순 없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 여러차례 건의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형평성을 이유로 쌍용차 부품사만을 직접 지원하긴 어렵고,특히 쌍용차에만 의존하는 '불안한' 전속 협력사엔 유동성 지원,어음 만기 대출 전환 등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쌍용차 법정관리 여부가 결정되기 전에 협력사에 대해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은 검토하지 않았다"며 "쌍용차,법원,정부 어느 곳으로부터도 어떤 요청도 받은 게 없다"고 밝혔다.

◆법원, 29일 실사 거쳐 회생여부 결정

법원은 29일 경기 평택의 쌍용차 공장을 방문해 현장실사를 벌일 예정이다. 고영한 서울중앙지법 파산4부 수석부장판사 등 판사들과 조사위원들은 쌍용차의 생산 · 연구시설을 둘러보고 경영진 노조 등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어본 뒤 다음 달 9일까지 쌍용차의 회생 또는 파산을 결정할 방침이다. 파산부 관계자는 "현장검증을 끝낸 다음 회사의 청산가치와 회생가치를 비교하고 대주주의 회생절차 남용 의도를 파악한 뒤 최종 판단을 내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법원의 개시 결정률이 평균 70% 정도인 만큼 큰 변수가 없는 한 회생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지만 쌍용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도 부품사들에 대한 뾰족한 대책이 나오는 건 아닌 만큼 협력업체들의 부담은 여전하다. 한 관계자는 "회생 결정이 내려져도 쌍용차가 어디까지 채무를 갚을 것인지를 가리는 데만 최소 6개월 이상 걸릴 전망"이라며 "그 전에 부품사가 무너진다면 동결됐던 어음 대금을 받아도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협동회 관계자는 "9월 출시를 앞둔 신차 C200에 들어가는 부품 개발비로 쌍용차가 협력업체에 지급해야 할 3000억원도 받기 어려워진 상태"라며 "다음 달 2일 쌍용차 평택공장 앞에서 법정관리 절차의 신속한 진행을 위해 노조에 구조조정 등 협조를 구하는 호소문을 배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미희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