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서 인테리어 사업을 하던 조병권씨(56)는 지난해 초 경기 부진으로 폐업한 뒤 소자본 창업아이템으로 치킨생맥주점을 선택했다. 하지만 점포 운영이 부담스러웠다.

5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 외식업은 초보여서 직원 관리나 접객서비스,전화주문 응대 등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조씨는 아내와 딸에게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평소 창업에 관심이 많았던 딸 선아씨(28)는 회사를 그만 두고 합류했다. 조씨는 지난해 4월 점포비용을 포함해 총 1억2000만원을 들여 점포를 냈다.

조씨와 아내는 각각 배달과 주방을 책임지고 싹싹하고 밝은 성격의 딸은 접객과 전화 응대를 맡았다.

3인 가족의 수입은 월 평균 1000만원 안팎이다.

조씨는 "오후 4시쯤 문을 열어 새벽 1~2시에 영업이 끝나지만 가족이 함께 하니 힘든 줄 모른다"며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가족 간 정도 더 깊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소자본 창업시장에서 가족이 힘을 모아 함께 점포를 운영하는 '패밀리 비즈니스'형 창업이 늘고 있다. 가족 창업은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과 함께 해 창업에 대한 불안감을 덜고 주인의식을 공유해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이점이 있어 불황기에 더욱 주목 받는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최근 발표한 '2009년 국내 10대 트렌드'에서 경제적 어려움과 정신적 불안감을 가족의 연대감을 통해 완화하려는 '신(新)가족주의'가 대두하고 인건비를 줄이고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가족형 창업'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부모 자금+자녀 노동력' 형태 많아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최근 많이 나타나는 가족 창업 유형은 부모의 자금과 자녀의 노동력이 결합한 형태다. 대학에서 전산학을 전공했지만 취업이 여의치 않던 최대순씨(28)는 어머니로부터 창업자금 8000만원을 지원받아 지난해 1월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66㎡(20평) 규모의 치킨전문점을 열었다.

음식점을 운영하다 쉬고 있던 어머니 박금진씨(54)도 자신의 경험을 살려 점포 운영을 돕고 있다. 월평균 수입이 1000만원이 넘는 등 장사가 잘 되자 가끔씩 나와 일을 돕던 남동생도 최근 본격 합세해 '패밀리 비즈니스'로 발전했다. 최씨는 "가족 모두 주인의식을 갖고 일해 각자 직원 2~3명 몫을 해낸다"며 "가족 간 화기애애하게 운영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손님들도 더 정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역할 분담으로 시너지효과 높여

가족 창업에 알맞은 업종으로는 직원을 구하고 관리하기 쉽지 않은 외식업이나 영업시간이 길고 상대적으로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주점,PC방 등이 꼽힌다. 배달직원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는 배달형 업종이나 서비스 업종도 가족끼리 운영하면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또 사전에 개인의 능력이나 관심 분야를 고려해 역할을 분담하는 게 좋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잉크 · 토너충전사업을 함께 하는 오동은(33) · 승필씨(30) 형제는 각자 장점을 살려 시너지 효과를 얻고 있다. 형은 전 직장에서 영업직으로 근무한 경험을 살려 신규 고객 발굴업무를 맡고 먼저 일을 시작한 동생은 기존 고객관리를 담당한다. 형 동은씨는 "둘이 업무를 나눠 하니 시간이나 자기 관리에도 효과적"이라며 "월평균 수익은 600만원 수준으로 정확히 반반씩 나눈다"고 말했다.

◆공사(公私) 구분 명확히 해야

전문가들은 가족 창업도 일종의 동업 형태이므로 무엇보다 공사 구분을 잘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투자 지분에 따라 이익을 배당하고 업무에 따라 적정한 인건비를 책정하는 등 이익 배분에 대한 원칙을 확실히 정해 두는 게 가족 간 불화를 방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사업 운영이나 업무 분담 등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반드시 대화로 푸는 자세가 필요하다.

강병오 FC창업코리아 대표는 "가족이라고 해서 잘못된 점이 있어도 말을 하지 않고 마음속에 담아 두면 오히려 더 큰 오해가 생길 수 있다"며 "가족 창업을 한 이상 서로 비즈니스적인 충고는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