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건설부문의 '한국형 욕실'은 지난해 정부의 우수디자인(GD) 대상을 수상했다. 발을 올려놓을 수 있는 계단형 세족대를 덧붙인 욕조와 의자를 설치한 샤워기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별하다기보다 '저런 아이디어가 어째서 이제 나왔을까' 싶은 것들이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건 옛말이다. 지금은 값이 비싸도 다홍치마다. 구두와 가방,넥타이는 물론 냉장고와 에어컨,휴대폰과 자동차,심지어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아름답고 매력적이어야 선택된다.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각국 정부가 디자인 경쟁력 강화에 나선 이유다.

우리도 같다. '창의적인 디자인 강국'은 국정 과제다. 지식경제부의 '제4차 디자인산업 발전 종합계획'은 그 핵심.2012년까지 2589억원을 투입,관련산업 규모를 14조4000억원으로 키운다는 포부다. 초등학교 미술 교과서를 '미술과 디자인'으로 개편하고,중학교 선택과목에 '디자인'을 추가한다는 방안도 포함됐다.

일찌감치 디자인의 중요성과 가치에 눈 뜨게 하겠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좋은 디자인의 요소는 무엇인가. 영국의 '국민 디자이너'라는 테렌스 콘란이 저명한 문화비평가 스티븐 베일리와 함께 펴낸 '디자인&디자인'에서 밝힌 정의는 이렇다. "좋은 디자인이란 98%의 상식과 2%의 미학(美學)으로 이뤄진다. "

콘란은 최근 수십년 동안 '모던 · 심플 · 유머'를 바탕으로 패션과 가구 등 영국의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진두지휘했다는 인물이다. 디자인은 다름 아닌 '기능 · 미 · 혁신'의 조화라는 것도 그의 주장이다.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 카림 라시드의 디자인에 대한 견해 또한 콘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디자인은 성 · 연령 · 계층 구분없이 공감을 얻어내는 동시에 사람들로 하여금 미소지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엘리트주의에 함몰되거나 일상과 동떨어지면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2008 한화 드림 컨퍼런스'에 참가했던 그는 자신의 디자인 영감은 경험에서 나온다고 털어놨다.

창의력이란 진공상태에서 솟는 게 아니라 해당분야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상식에서 비롯된다는 말이다. 98%의 상식이 중요한 건 제품 디자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부의 정책 디자인 또한 건전한 상식에 2%의 특별함을 보탤 때 설득력을 가질 게 틀림없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