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금융기관협의회가 건설 조선 산업을 대상으로 벌이고 있는 신용위험 평가에서 퇴출 또는 워크아웃 대상으로 분류되는 기업이 예상을 크게 밑돌면서 기업구조조정 작업이 용두사미 꼴이 되고 있다고 한다. 급기야 금융당국이 나서 대상기업을 늘릴 것을 종용했지만 현실은 당초 의도했던 구조조정 효과와는 거리가 먼 모양새다.

채권금융기관협의회 평가에서는 심사대상기업 111개사 가운데 14개사 정도가 최종적으로 구조조정 대상으로 확정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퇴출(D등급) 1개사 워크아웃(C등급) 10개사, 조선업계에서는 워크아웃 3개사로 내용이 압축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결과적으로 심사대상기업 대부분이 A등급(정상) 또는 B등급(일시적 유동성 부족)으로 평가받은 셈이다.

채권금융기관들이 과연 구조조정을 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건설 및 중소 조선업체들의 부실문제가 나라 경제에까지 큰 부담을 주고 있는 상황인데도 이런 결과를 내놓았으니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건설업계 시공능력 10위권업체와 50위권 업체 등 대규모 기업들도 대상에 포함됐다고는 하지만 지극히 당연한 결과로 생색낼 일은 결코 아니다.

채권금융기관들이 구조조정 대상기업을 축소하려는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퇴출 또는 워크아웃기업이 늘어나면 부실채권도 그만큼 증가하면서 경영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또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하락 등으로 연결되는 것도 당연한 흐름인 만큼 부실채권을 현실화시키는 일은 우선 피하고 보자는 심리가 작용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부실기업을 계속 지원하며 끌어안고 가는 것은 은행 스스로 자살행위를 저지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퇴출돼야 할 기업을 계속 살려놓을 경우 시장질서 왜곡 등으로 업계 전체에도 큰 피해를 미침은 물론이다. 이번 구조조정 대상기업 선정이 안도감을 주기보다는 우려를 증폭시키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건설 조선에 이어 자동차 해운업계 등 다른 산업의 구조조정도 예정돼 있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