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의 선택이 과연 옳았을까. 현지시간으로 20일 제44대 미국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하는 버락 오바마에게서 발견한 능력 한 가지는 바로 '소통의 기술'이다. 위기 극복에 국민들과 의회를 동참시키는 집요한 노력과 능력만을 따진다면 A학점을 줘도 후하지 않을 듯싶다. 국가 리더로서의 기본자질은 갖췄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오바마는 지난해 11월4일 당선된 이후 취임일까지 77일간 정권인수 작업을 벌이면서 솜사탕 같은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경제팀과 외교 · 안보팀 조각 인선은 시장과 언론으로부터 드림팀이라고 평가받았다. 전임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좋은 바람막이였다. 오바마 당선인은 미묘한 사안마다 "미국의 대통령은 한 사람"이라며 부시를 배려하듯 앞장세웠다. G20 금융위기 정상회의에 불참하고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에 침묵을 지켰다. 구제금융 7000억달러 중 2차분 3500억달러 집행건을 놓고는 뜸을 들이다가 애초 입안자인 부시가 결국 의회에 승인을 요청하도록 유도했다.

오바마는 대신 극적인 효과를 최대화하는 데 집중했다. 부시가 물려준 경제난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최우선적으로 천명했다. 장관 후보자 발표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와 기자회견을 직접 갖고 심각한 경제상황을 부각시켰다. 시카고에서 워싱턴에 입성한 첫날은 상원과 하원의 민주당,공화당 지도부를 방문해 하루종일 경기부양안을 세일즈했다. 의심이 있는 의원들은 언제든지 찾아와 토론하자고 했다. "Yes,we can(우리는 해 낼 수 있다)"이라며 자신부터 발벗고 뛴다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취임일이 다가오자 오바마의 소통기술은 보다 정교해졌다. 희망의 불쏘시개를 지피면서도 모든 난제를 일거에 해결할 '마술 지팡이'는 없다고 국민들을 설득했다. 지난 11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대선공약을 수정할 수 있으며,경제회복의 결과를 맛보려면 국민 모두가 희생해야 한다"고 운을 뗐다. 15일에는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에 들러 "정말 어려운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 내 정치적 자본을 쏟아붓겠다"며 사회보장제도와 은퇴자 의료보험제도 개혁을 내비쳤다. 미 정부가 지난해 GDP의 4%와 3.2%에 달하는 재정을 지출한 두 제도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도 손대다가 실패한 난제다.

취임 전 행사의 일환으로 17일 기차여행에 나선 길에서의 역설은 백미였다. "경제위기,이라크 ·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쌓여 있다"고 강조하더니 "그런 도전들이 빨리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고,오류와 결함,좌절과 실망이 있을 것이며,나도 서두르면서 실수를 할 것이나 인내심이 요구될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 뒤 맵고 쓴 현실과 부닥쳐야 하는 중압감을 솔직히 털어놓은 고백이며 국민들이 기대치를 좀 낮춰달라는 호소였다.

오바마의 경제회생 프로그램이 경제를 개선시킬 것이라고 믿는 신뢰도와 오바마에 대한 호감도는 80%를 육박하고 있다. 그가 익히 인식한 것처럼 작전지도상의 리더십과 실전 리더십은 다르다. 변화와 꿈과 희망을 그저 얘기하는 것과 그것을 실현시키는 능력은 판이하다. 지금까지 '당선인 오바마'의 화려한 소통력이 성공작이었다면 '대통령 오바마'의 본 실력은 이제부터 보여줘야 한다. 워밍업은 끝났다. 취임 100일의 성적표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워싱턴=김홍열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