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깊었어라이 추위 막바지에

묽은 햇빛과 눅눅한 바람이

한 끝씩 빨래를 잡고 말린다

빛과 바람의 모세혈관이

섬유를 빗질하는 섬세한 소통을

처음으로 눈치챈다

캄캄한 땅속을

명주실 꿴 바늘처럼 기워 흐르는

지하수도,흐르다가 얼어 멈추었으련만 (…)

이상하다

닫혀 있던 내 오관의 눈시울들이

한기 속에 홀연 잠을 깬다

-김남조 '겨울 어느날'부분


한겨울에도 빨래는 마른다. 창백한 햇빛과 눅눅한 바람의 모세혈관이 섬유를 빗질해서 섬세한 소통을 이뤄내기 때문이다. 추위에 동면하는 동물이나 성장을 멈춘 나무에도 생명은 흐른다. 추위에 숨죽인 생명은 봄기운과 함께 농축된 힘으로 용수철처럼 튀어오를 것이다. 인류역사에서 힘들지 않은 시기는 없었다. 고난은 늘 넘어야 할 숙명이었다. 아무리 힘겨운 세월이라도 삶을 보듬고 정신을 가다듬다 보면 어느새 지나간다. 어떻든 지나가고 만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