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들은 노후에 대한 관심은 높은 반면, 안락한 노후를 맞기 위해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데는 소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박병연기자의 보도입니다. 최근 국내 한 보험사가 전국의 남녀 5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전체 응답자의 3분의 1 가량이 노후에도 생활비를 벌어서 쓰겠다고 응답했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60세 이상 세대주의 근로소득이 38만1천원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불행한 노후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은퇴시기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반 기업의 정년퇴직 연령인 55세 이후에도 계속 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사람이 전체 응답자의 86%에 달했고, 65세 이후에 은퇴할 것이란 응답자도 29%나 됐습니다. 사라 하퍼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중국 등 많은 아시아 국가 사람들이 정부가 자신들의 노후를 책임질 것이라고 믿고 있는 반면 한국인들은 정부에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한국인들은 저축을 늘리고 보다 오랜기간 노동시장에 머무르는 방법을 노후준비 수단으로 선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웃나라인 일본은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20.6%를 넘어서 세계 최초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은퇴자들은 비록 직장에서는 밀려났지만 여전히 사회의 중심축으로서 아름다운 노년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전체 개인금융자산 중 75%를 60세 이상 노인들이 보유할 정도로 부자 노인이 많습니다. 반면 우리나라 노인들이 갖고 있는 금융자산은 전체 개인금융자산의 20%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일본의 베이비 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들이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반세기 전에 도입된 연금제도와 저축 등의 은퇴플랜을 꾸준히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노지리 사토시 일본 피델리티 퇴직연구소장 “최근 대만 등 아시아 각국에서 확정각출연금이라는 제도가 도입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제도를 도입했다고 해서 완벽한 노후준비 시스템이 갖춰졌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은퇴 이후에 어느정도의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선 개개인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홍콩의 경우는 이미 1993년 자율적인 퇴직연금제도(ORSO)를 도입한 이후 시행착오를 거쳐 지난 2000년 강제퇴직연금제도(MPF)로 전환했습니다. 월 소득이 5000홍콩달러(66만원) 미만이면 고용주만 월급의 5%를, 그 이상이면 근로자도 5%를 의무적으로 납부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해 3월말 현재 고용주 가입률 98.8%, 근로자 가입률 97.5%라는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루치아 홍 홍콩 HSBC 퇴직연금 최고책임자 “한국 정부도 퇴직연금 도입 사업주와 근로자에게 각종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국민들이 은퇴문제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스스로 대비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1954∼1963년생)가 정년(만 55세)을 맞는 올해부터는 은퇴자들이 대거 쏟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국민연금과 공적부문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줄어드는 터라 ‘돈 없이 오래 사는 것’이 노후생활의 최대 고민이 됐습니다. 은퇴 이후에도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생활하려면 노후소득이 생애평균 소득의 60% 이상은 돼야 합니다.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의 권고 수준은 80%이며 선진국들도 60∼80% 수준에 맞추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근로기간과 은퇴기간을 고려할 경우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에 의한 실질소득 대체율은 45.1%에 불과합니다. 류건식 보험연구원 재무연구실장 “국민연금의 경우는 인구고령화로 재정부담이 더욱 가중되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는 공적연금 비중은 축소시키고, 개인연금이나 퇴직연금을 통해서 실질소득 대체율을 제고시키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실질소득 대체율이란 현재 소득 대비 앞으로 받을 연금의 현재가치 비중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매월 200만원을 버는 사람의 대체율이 60%라면, 이 사람이 받게 될 연금은 120만원인 셈입니다. 류건식 보험연구원 재무연구실장 "우리나라의 경우 개인연금은 아직 활성화돼 있지 않고, 퇴직연금은 도입된지 3년이 지났지만 가입비율이 매우 저조한 실정입니다. 개인연금이나 퇴직연금 가입비율을 제고하기 위해선 세제혜택 확대는 물론 수급권 보장 장치의 재정비와 퇴직금 중간정산제 폐지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젊을 때의 빈부격차는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극복될 수 있지만 은퇴 이후의 빈부격차는 죽을 때까지 메울 수 없습니다. 결국 스스로 준비하고 미리미리 대비하는 사람만이 아름다운 인생의 2막을 맞을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박병연기자 bypark@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