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정책 불신이 원인…얼굴 감춘 집단심리의 非이성 표출
[Focus] 빗나간 ‘미네르바 신드롬’…대중은 ‘인터넷 최면’에 빠졌다?
'온라인 경제대통령'으로까지 불렸던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구속으로 사회가 시끄럽다.

일개 '힘 없는' 개인의 온라인상 의견 표출에 대해 일부 실정법 위반 혐의가 있더라도 구속수사까지 하는 게 정당하냐는 비판에서부터 "검찰에 잡힌 미네르바는 가짜고 진짜 미네르바는 따로 있다"는 설까지 떠돌고 있다.

일각에선 온라인상 의견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놓고 집단지성에 대한 경찰국가의 후진적 검열행위라고 비판하고, 다른 한편에선 익명에 기댄 무책임한 행위가 가져온 파장에 대한 정당한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반박한다.

너도나도 '미네르바'에 대해 얘기하고 의견을 표출하는 상황에서 한국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킨 '미네르바' 현상에 대해 찬찬히 살펴보자.

⊙ 집단지성과 집단군중심리의 아슬아슬한 경계

미네르바는 철저하게 자신의 존재를 베일에 싼 채 활동했다.

그의 '예언'은 틀린 것도 있고, 맞는 것도 있지만 중요한 시기마다 과감하게 행한 그의 주요 '도박성' 발언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게 사실이다.

미국의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이나 한 · 미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을 비롯해 이와 관련된 일부 환율 전망들이 귀신이 곡할 정도로 맞아떨어진 것.

당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나 정부발표가 실제 시장상황과 적잖은 차이를 보이던 상황에서 미네르바의 '신통력'은 그만큼 부각됐고 외신에 의해 한국판 '노스트라다무스'에 비견되기도 했다.

물론 미네르바의 전망과 관련한 논리구조나 배경 등에 대해 '비전문가의 것'이고 이미 언론보도 등을 통해 알려진 사실이었다는 평가가 없진 않았지만 당시 대중에게 미네르바가 전문가냐 아니냐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나마 미네르바의 전문성이 의심된다는 평가도 미네르바가 체포돼 '30대 백수 비전문가'라는 게 밝혀진 다음 사후적으로 봇물 터지듯 튀어나왔다.

미네르바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그는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근무한 50대의 외환 관련 전문가로 일반적으로 통용됐고, 일부 정치권과 언론에서 그의 글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미네르바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평가가 높아지면서 전문가라는 사람들까지 무엇에 홀린 듯 앞다퉈 미네르바의 식견과 전문성을 찬양하고 나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청와대 경제수석과 금통위원까지 지낸 현직 경제학 교수는 그를 '국민의 경제 스승'이라며 치켜세웠고 과거 지성의 대명사로 평가받던 서울대 교수까지 그를 두고 인터넷 '집단지성'을 거론하고 나섰다.

국민적 신뢰를 상실했던 기획재정부도 미네르바에 공식적인 토론까지 제의하며 미네르바의 격을 높여줬다.

이 같은 미네르바 고평가 현상의 근원적 요인은 물론 어려운 경제사정과 무능한 정부경제팀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의 호언과 전망과는 달리 나날이 나빠지는 경제를 피부로 체감하면서 경제정책 수행의 핵심인 '신뢰'를 상실한 것.

이처럼 정부의 초라한 실적과 경제전문가들의 무능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밑거름 삼아 인터넷 커뮤니티의 집단 목소리가 커져갔다.

인터넷을 매개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는 양날의 칼과 같은 존재로 집단지성과 온라인군중심리의 경계선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소비대중이 시장 가격을 결정해 가는 대중의 지혜라는 것과 인터넷의 집단 최면은 손쉽게 혼동될 수 있는 상황이었고 그 애매한 틈을 타고 미네르바의 영향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셈.

이번 사태와 관련해선 일찍이 귀스타브 르 봉이 자신의 저서 '군중심리'에서 설파한 "군중속의 인간은 개별적일 때와는 다르게 이성에 의해 행동하기보다는 광기, 패닉, 공포, 희망 등 집단적 · 원초적 감정에 휩싸여 무의식적이고 동물적인 과격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이 온라인의 바다를 배경으로 재현된 면도 없지 않다.

오히려 '오프라인 군중'보다 자신의 얼굴과 정체를 숨기는 익명성이 강한 온라인 속에서 이 같은 일종의 군중심리는 더욱 기승을 부린 측면이 없지 않다.

어설픈 경제 및 과학용어와 이곳저곳에서 짜깁기한 자가당착적인 글들이 공적인 정부 통계보다 신뢰를 얻었고 금융과 실물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되돌아 보면서 이성과 질서와 가치의 자리를 일종의 주술과 속류 경제학이 자리를 잡았다는 데서 전문가와 정부기관의 반성은 물론 집단 군중심리의 어두운 그림자의 일부분도 비쳤다는 데서 모두가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 정부신뢰 회복 못하면 '가짜설' 끊이지 않을 것

역사적으로 경제생활이 어렵고 정부에 대한 신뢰가 상실했을 때 일종의 '의적'과 '메시아'들이 난무했다.

일종의 구세주와 예언자로 불린 이들 인물은 생물학적 죽음이 오더라도 주변 사람들과 군중에 의해 "가짜가 대신 죽었다"든가 "어디론가 숨었다"는 식의 전설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죽음이 거부되곤 했다.

한국사의 혼란기에 꾸준히 등장했던 미륵불 신앙을 비롯해 예수 같은 종교적 인물은 물론, 로마황제 네로와 전설 속의 아더왕, 샤를마뉴,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 콘스탄티누스 11세,성 올라프,알렉산드르1세, 러시아 이반뇌제의 아들 드미트리 등이 영생이나 환생설화의 주인공으로 격상됐다.

현대 사회에선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가 이 같은 영역에 들어섰다고 한다.

이들은 로빈훗이나 일지매, 홍길동처럼 일반 사람들의 정부나 정권에 대한 불만, 팍팍한 삶에 대한 괴로움을 반영하며 이 같은 현세의 속박을 풀어줄 꿈과 희망이 투사된 존재였다.

미네르바가 체포된 이후 온라인 상에선 "진짜 미네르바는 따로 있다"거나 "내가 미네르바니 나를 잡아가라"는 식의 반응이 속출하고 있다.

미네르바가 21세기판 홍길동으로 또다시 격상될 전제조건이 갖춰지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의 과학적 분석, 정부의 공식적 발언이 온라인 익명의 무분별한 주장보다 힘을 얻고 제대로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정상상태'가 되기 위해선 우선 경제위기 상황 속에서 정부와 경제전문가들의 실력발휘가 우선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제2, 제3의 미네르바는 꾸준히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게 지나간 역사와 최근의 인터넷 환경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