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위권 이내 건설사가 C등급 이하 판정을 받아 워크아웃이나 퇴출절차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구조조정에 들어갈 전체 숫자도 단언컨대 20개를 넘지 않습니다. "기업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은행과 금융당국 관계자들의 최근 발언이다. 지난 2일 본지가 건설사와 조선사의 신용위험도 평가표를 단독으로 입수,공개했을 당시 시장은 "정부의 구조조정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며 주가상승으로 화답했다. 국내 증권사와 외국계 투자회사들도 본지의 평가표를 기초로 100대 건설사의 재무 및 영업위험도를 평가한 결과 최대 40%의 건설사들이 C등급 이하를 받을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불과 2주일도 안 돼 그 비율이 절반도 안 되는 10%대로 추락한 것이다.

원인은 두 가지다. 퇴출선상에 놓인 기업들의 필사적인 로비와 정부의 애매모호한 태도다. 한 마디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읽을 수 없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말로는 신속한 구조조정을 강조하지만 한계상황에 직면한 중소기업에 대해서조차 자금지원을 독려하는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여신 담당자는 "신용등급 B+ 이상 기업만 지원하라고 하지만 실제로 이 중에서도 은행이 도와주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기업들이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대출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겠다며 은행을 상대로 자금 공급 압력을 넣는 마당인데 어떻게 부도처리를 하겠느냐는 것이다. 이 결과 상당수 은행들이 주거래 관계에 있는 건설사에 모두 합격점인 B등급 이상을 줬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은행의 한 임원은 "모든 기업을 끌고 가려고 할 경우 금융활동은 더욱 위축되고 시장의 회복만 늦어질 뿐"이라고 지적했다. 또 "지금 정부의 역할은 이미 마련된 원칙에 따라 구조조정이 차질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금융기관을 독려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구조조정의 후퇴가 시장의 불확실성과 함께 우량기업의 자금경색을 오히려 심화시키면서 경기가 U자형의 신속한 회복이 아닌 L자형 장기불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칼을 뺄 수 있는 기회는 단 한번이다. 이번에 흐지부지돼 면죄부를 받은 기업들이 적극적인 자금지원을 요청할 경우 과연 은행들이 어떻게 뒷감당을 할 것인지 벌써부터 우려된다.

이심기 경제부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