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구조조정 없던 일로(?)
원인은 두 가지다. 퇴출선상에 놓인 기업들의 필사적인 로비와 정부의 애매모호한 태도다. 한 마디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읽을 수 없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말로는 신속한 구조조정을 강조하지만 한계상황에 직면한 중소기업에 대해서조차 자금지원을 독려하는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여신 담당자는 "신용등급 B+ 이상 기업만 지원하라고 하지만 실제로 이 중에서도 은행이 도와주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기업들이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대출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겠다며 은행을 상대로 자금 공급 압력을 넣는 마당인데 어떻게 부도처리를 하겠느냐는 것이다. 이 결과 상당수 은행들이 주거래 관계에 있는 건설사에 모두 합격점인 B등급 이상을 줬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은행의 한 임원은 "모든 기업을 끌고 가려고 할 경우 금융활동은 더욱 위축되고 시장의 회복만 늦어질 뿐"이라고 지적했다. 또 "지금 정부의 역할은 이미 마련된 원칙에 따라 구조조정이 차질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금융기관을 독려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구조조정의 후퇴가 시장의 불확실성과 함께 우량기업의 자금경색을 오히려 심화시키면서 경기가 U자형의 신속한 회복이 아닌 L자형 장기불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칼을 뺄 수 있는 기회는 단 한번이다. 이번에 흐지부지돼 면죄부를 받은 기업들이 적극적인 자금지원을 요청할 경우 과연 은행들이 어떻게 뒷감당을 할 것인지 벌써부터 우려된다.
이심기 경제부 기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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