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이지만,후진을 위해 길을 터주기로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15일 서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국제회의장에 들어선 이구택 포스코 회장(63)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포스코 최고경영자(CEO) 포럼'에 참석한 그는 이동희 부사장(기획재무부문장)이 작년 경영실적 발표를 끝내자 직접 마이크를 잡고 "회장직을 그만두기로 했고,이런 사실을 오전에 열린 이사회에도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최근 경영환경은 우리 모두에게 외환위기를 극복한 이상의 용기와 도전을 요구하고 있다"며 "지금과 같은 비상상황에선 새 인물이 새로운 리더십을 발휘해 위기를 극복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기를 1년여 남겨두고 있지만 CEO는 임기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포스코의 미래를 후배에게 맡기기 위해 물러난다는 뜻이다.

업계에선 이 회장이 정치적인 압력 때문에 물러난 것으로 보고 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회장직에 오른 이 회장은 2007년 봄 연임해 내년 2월까지 임기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재계에선 작년 말 시작된 검찰 수사로 이 회장이 자의반 타의반 퇴진하는 것이란 해석도 내놓고 있다. 검찰은 포스코가 2005년 대구지방국세청의 정기 세무조사를 받는 과정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 회장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하는 등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차기 회장이 선임되는 다음 달 27일 주주총회 당일 정식 은퇴한다.

포스코는 이 회장이 사퇴의사를 밝힘에 따라 비상경영체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 회사는 철강 수요 감소와 원자재값 인상에 따라 경영 환경이 악화되자 이미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이 회장이 갑작스레 사퇴 의사를 밝히자 회사 내부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포스코 내부에선 그러나 이 회장이 재임 기간에 밑으로부터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회사를 운영하는 이른바 시스템 경영 구도를 정착시켜 놨기 때문에,그가 사퇴하더라도 경영 목표 달성을 위한 행보에 큰 걸림돌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조재길/장창민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