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이후 근대 서양의 문화예술 사조를 떠받친 두 기둥은 이성과 감성이다. 이성이 중시되고 창작의 원리로 처음 작용한 것이 고전주의였다. 그러다 인간 이성의 한계와 엄격함에 염증을 느낀 문화예술가들은 감성에 기대게 된다. 낭만주의가 나온 배경이다. 음악의 경우 바흐 베토벤에서 슈만으로 넘어가는 식이다. 그러나 감성의 변덕스러움과 무절제가 돋보이면 다시 이성으로 축은 바뀐다. 그래서 사실주의 사조가 나왔다. 또다시 무게중심이 반이성으로 옮기면서 자연주의가 나왔고,시간이 지나면서 그 반대로 신고전주의가 태동했다. 이성의 축에는 합리성과 논리,지성과 냉정이 같은 가치로 있다. 감성 축에는 감정과 직관,격정과 탈논리가 아류다. 이성과 감성이라는 상반되는 특성이 음악과 미술,문학과 건축에 이렇게 교차로 강조되면서 근대 서구예술은 풍성해졌고 인류문화도 주도했다. 현대에 와서 이성의 축과 감성의 축은 공존하고 균형도 이루며 문예작품은 더 다양해졌다. 동양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인의 자유분방한 감성과 예술혼이 투영되고 미적감각의 발현이라는 관점에서 서예(藝)라는 말이 나왔다면,고고한 선비정신이 담기고 학문하는 이가 도에 달하는 방편이라는 관점에서 서도(道)가 나왔다. 모두 귀한 문화재로 남았지만 추사의 문인화나 혜원 풍속화의 지향점이 다른 것도 다 그런 것이다.

경제에서도 중심축은 교차한다. 경제 연구의 지향점은 자유와 형평으로 나눠질 것이다. 이런 가치문제는 미뤄두고,경제의 변화,경기의 순환 측면에서 보면 경제심리의 축은 탐욕과 공포다. 탐욕의 선상에 의욕과 의지,도전이란 가치가 있고 공포쪽에는 걱정과 좌절,절망이 있다.

탐욕은 팽창기,성장국면에서 꿈틀거리는데 경제주체들도 모르는 새 괴물로 급성장한다. 부동산 거품,주식시장 과열,과도한 레버리지 투자가 탐욕의 결과다. 탐욕 라인이 경제를 키우기도 하지만 여기에 부패와 방종이라는 악성 바이러스가 묻어 있다는 점이 문제다. 방종 심리는 자기 역량과 분수를 못 보게 하고,부패는 거품을 더 키우기 십상이다. 또 한번 탐욕의 끝에서 거품이 폭발했다. 지금이 그렇듯,탐욕의 끝은 늘 위기다.

이렇게 경제가 침체를 넘어 침몰지경이 되면 공포가 압도한다. 탐욕의 국면에서는 과욕에 사로잡힌 인간군상의 실상이 잘 보이지 않는데 공포의 시기에는 겁에 사로잡힌 우리 모습이 뚜렷이 보인다는 점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그래서 버블은 늘 터진 뒤에나 그게 버블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법인지 모른다. 또한 유사 이래 모든 버블국면에서도 대다수는 "이번만은 거품이 아니다"라고 정말로 굳게 믿는 것이며,모든 버블은 반드시 터진다는 두 가지 사실만이 진실로 남게 된다.

지금 공포의 시기가 길어진다는 전망이 많다. 그러나 탐욕기가 그렇듯 이 공포기도 끝은 있다. 한참 뒤일까,조만간일까. 그건 우리 심리에 달렸다. 공포에서 벗어나 어두운 터널 밖으로 나가 다시 세운다는 의지는 그래서 중요하다. 그게 공포심리로 근육과 신경까지 굳어진 몸에 가장 좋은 치료제다. 공포가 근육과 신경마비에다 두뇌활동도 막으니 말이다. 탐욕이 자기를 과대평가하고 매사 과신하게 하는 것과 비교되는 증상이다. 굳이 공포에 갇힌 우리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고 싶다면? 뭉크의 그림 '절규'를 찾아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