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하자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토사구팽'이라니요?"14일 오후 경기도 평택에서 만난 쌍용자동차 1차 협력업체 A사 최모 사장은 "혼자만 살겠다고 법정관리를 신청한 쌍용차에 배신감을 느낀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지난달 말 쌍용차에서 '상하이차가 조만간 자금 지원을 해 줄 것이니 부품 대금으로 받은 어음 만기를 1월29일로 30일만 연장해달라'고 간청해 들어줬는데 돌연 법정관리 신청을 해버렸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법정관리 절차에 따라 쌍용차가 협력업체에 발행해 준 2115억원 규모의 어음 등 모든 채권과 채무는 동결됐다. 법정관리 여부가 결정되기 전까진 쌍용차가 어음 대금을 갚을 필요가 없단 얘기다. 문제는 대부분의 협력사들이 자금 조달을 위해 이미 받아놓은 어음을 은행에서 할인받아 현금을 끌어 썼다는 점이다.

어음 만기인 29일 쌍용차가 돈을 결제하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법정관리 신청에 따른 채무동결로 애꿎은 협력사가 대신 돈을 갚아야 할 상황이다. 이달 말 만기가 도래하는 어음 규모는 약 870억원에 달한다. 최 사장은 "가뜩이나 자금난에 시달리는데 어디서 돈을 구하느냐"며 "1차 협력업체의 자금줄이 막히면 2차,3차를 포함한 1000여개 부품사가 연쇄 부도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13일 쌍용차 협력사 대표와 정부가 만나 간담회를 열었지만 뾰족한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최 사장은 "쌍용차 납품 비중이 높은 영세한 부품회사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됐는데 정작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분위기라 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형평성을 들어 쌍용차 부품사만 직접 지원하긴 어렵고,특히 쌍용차에 100% 의존하는 '불안한' 전속업체엔 유동성 지원이나 어음만기 대출 전환 등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3일 한국타이어 등 쌍용차의 일부 대기업 협력사들이 부품 대금 미지급 등을 이유로 납품을 끊으면서 쌍용차 공장 가동까지 전면 중단되자 중소 협력사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쌍용차 사태가 상하이차와 사측,노조,정부의 떠넘기기 속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사이 중소 부품사들의 '새우등'만 터지고 있다.

김미희 산업부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