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들어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언제라도 그곳에서 껄껄껄 웃던.월말이면 월급 타서 로프를 사고,연말이면 적금 타서 낙타를 사자.그래 그렇게 산에 오르고,그래 그렇게 사막에 가자.가장 멋진 내 친구야,빠뜨리지 마.한 다스의 연필과 노트 한 권도.오늘도 목로주점 흙바람 벽엔 삼십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 '1981년 발표된 이연실의 '목로주점'이다. 세상 모든 사물은 인식해야 존재한다고 하거니와 뭐든 내가 각별하게 인식하고 나면 이전까지와 전혀 다른 무게와 의미로 다가선다. 노래도 같다. 무심코 듣고 부르던 곡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가슴을 파고 드는 순간이 있다.

설운도의 '향수' 혹은 성시경이나 홍경민의 트로트처럼 같은 노래를 다른 스타일로 듣게 될 때도 그렇고,지금의 처지나 상황이 곡의 분위기나 가사와 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싶을 때도 그렇다. 전부터 알고는 있었으나 즐겨 부르진 않던 '목로주점'에 갑자기 빠진 건 후자의 경우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하다는 경제 위기로 인한 어두운 소식들 탓이었을까. 봉급쟁이 생활이란 게 허구한 날 헉헉거리며 산을 오르거나 뜨거운 뙤약볕 아래 사막을 건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월말이면 로프를 사서 산에 오르고,연말이면 낙타를 사서 사막에 가보자는 대목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여야 원내 대표들이 TV쇼에 나와 어깨동무를 한 채 '목로주점'을 불렀다. '멋들어진 친구' 운운 하면서.누가 선택했는지는 알 길 없다. 셋 중 한 사람 혹은 프로그램을 담당한 쪽에서 골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루가 아쉬운 민생법안을 산더미처럼 쌓아둔 채 한 달 가까이 국회를 파행 상태로 몰아넣었어도 잘리거나 세비를 못받을 걱정 없는 그들이 짐작이나 할까. 칼바람 부는 한겨울에 쫓겨날까 마음 졸이는,속으론 하루 열두번씩 사표를 쓰면서도 봉급날만 기다리는 이들의 심정을.

정치를 하자면 앞에서 싸우고 뒤에서 타협도 해야 할 것이다. 여야의 어깨동무는 어디까지나 국민을 위해 필요한 협력과 양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봉급날이면 한 달을 버틸 동아줄,연말이면 1년을 버텨줄 낙타를 사고 싶은 국민들 앞에서 그들이 부른 '목로주점'이 쇼였는지 아닌지 지켜볼 일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