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목욕할 때는 두 가지 수건을 쓴다. 상체는 부드러운 갈포수건으로 닦고,아래는 거친 수건을 사용한다. 욕탕에서 나와 부들 돗자리에 서서 가운을 걸치고 몸을 말린다. ' 중국 전한시대 '예기(禮記)'에 실려 있는 임금의 목욕 예절로,부들 자리가 왕실에서도 인기를 누렸음을 증명해주는 사례라 할 만하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고전 '시경(詩經)'에는 부들을 남성에,연꽃을 여성에 비유하여 정답게 자라고 있는 정경을 그린 노래도 담겨 있다.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는 '술을 마시고 함께 좋은 차까지 맛보며/부들방석(포단:蒲團)에 앉으니 말이 필요없네'라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예로 부터 부들만큼 많은 인기를 누리면서 친근한 습지식물도 그리 흔하지 않을 듯 싶다. 부들 줄기를 갈라 짠 돗자리를 비롯 발 멍석 방석 소쿠리는 최고급으로 전혀 손색이 없었다. 부들 솜털을 모아 병사의 방한복으로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꽃가루인 포황 또한 한방에서 이뇨제 지혈제 염증치료제 등으로 쓰였다. 게다가 부들꽃이 핫도그 모양의 튼실한 방망이로 변할 즈음 방죽을 찾아 부들방망이를 꺾어 칼싸움하던 추억을 간직한 사람도 적지 않을 터이다. 물론 근래 들어 서식지가 급감하면서 사람들의 관심도 줄어들긴 했지만 동양식 정원을 꾸미거나 꽃꽂이를 할 때는 여전히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부들을 원료로 고급 재질의 종이와 바이오 에탄올을 동시에 생산할 수 있는 첨단기술이 국내 한 대학 연구진에 의해 세계 최초로 개발됐다는 소식이다. 이들은 미국 업체에 기술수출 등으로 올해에만 375억원 규모의 매출을 올리며,장기적으로는 미국 노스다코타주에 직접 공장을 지어 매출을 수십배로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원료의 전처리와 발효균주 개발과정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비식량 바이오매스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셈이다.

석유 한방울 나지 않는 우리로서는 귀가 솔깃한 얘기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기후변화에 대응하고,버려진 자원을 에너지로 살려내면서,일자리도 창출해내는 이른바 녹색뉴딜사업의 전형이 아닌가. 이번 사업이 순조롭게 추진돼 우리나라 차세대 녹색에너지 분야의 간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김경식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