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설 <경제부 기자 surisuri@hankyung.com>

지난 6일 오후 6시10분.농협 출입 기자들에게 문자 메시지 하나가 왔다. '농협회장 기자회견,내일 오전 9시50분.참석바랍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갑작스런 회견인 탓에 그 이유가 궁금했다. 특히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은 2007년 말 취임한 뒤 1년 넘게 한번도 기자간담회를 갖지 않았던 터였다.

'깜짝 놀랄 농협 개혁안을 내놓으려는 건가. ''혹시 회장에서 물러나겠다는 걸까. '

의문을 풀 길이 없어 바로 농협 홍보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담당자는 "내일 아침이 돼야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라고만 답했다.

다음 날인 7일 궁금증은 자연스레 해소됐다. 최 회장은 이날 '농협을 농업인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농협 개혁안을 발표했다. 회장 임기를 단임제로 바꾸고 주요 임원에 대한 인사추천권도 내놓겠다는 게 주 내용이었다. 조합과 중앙회를 구조조정하고 농산물 유통 구조를 쇄신하겠다는 안도 포함됐다.

언뜻 봐서는 '농협이 이제 제대로 개혁을 하려나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전임 중앙회장들의 잇단 비리로 실추된 농협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내용이 됨 직하다고 보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사실 농협 개혁안은 농림수산식품부가 9일 발표할 계획이다. 농협이 발표한 내용 이상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 방안이 포함될지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이 농협 개혁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수석들에게도 확실한 개혁 방안을 마련해 차질없이 시행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농협에 쏟아지고 있는 비판적인 여론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공기업 개혁 못지않은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농협의 '개혁안'은 농식품부가 9일 내놓을 개혁 방안을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이날 발표가 없어도 외부 충격이 몰아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발적인 개혁 모습을 서둘러 보인 셈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중앙회장들이 구속될 때마다 되풀이돼온 사죄와 개혁의 목소리가 시늉으로 끝나는 것은 곤란하다.

최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 앞서 간부들과 함께 농협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사죄의 절을 했다. 또다시 고개를 숙이는 일이 없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