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대하고 높은 꿈보다는 바로 눈 앞에 있는 다음 목표만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력을 다할 따름입니다."

우리은행 동여의도 지점장인 박춘자씨는 지난해 하반기 우리은행이 실시한 동일그룹 내 지점 평가에서 1등을 차지했다. 올해 초 자리를 옮겼지만 지난해 경기도 성남 분당의 시범단지 지점에서 12명의 직원과 함께 60억원의 순익을 올렸다. 분당 지점장으로 있던 2년반 동안 끌어들인 수신금액만 1000억원이 넘는다. 지점 등급도 한 계단 올렸다.

"영업은 발로 합니다. 아파트 부녀회와 반상회는 물론 각종 지역 모임에 얼굴을 내미는 것은 기본이죠.상대방으로부터 '믿을 만한 사람이구나'라고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돈을 맡기는 건 그 다음이죠.지점장급이면 적어도 300명 이상의 고객 리스트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

1974년 당시 서울여상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춘자씨는 그 해 여름방학이 끝나던 8월20일부터 우리은행으로 출근했다. 그렇게 시작한 은행원이 올해로 35년째다.

지난해는 은행원에게 외환위기 못지 않게 힘든 시절이었다. 오죽하면 퇴근하면서 은행배지를 떼고 사무실을 나온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올해는 벽두부터 구조조정의 칼바람에 내몰리고 있다. "펀드가 반토막이 나면서 고객 못지 않게 은행원들도 마음 고생이 심했죠.은행이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매도당하는 게 억울할 때도 있지만 고객들이 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은행원이 감내해야 할 몫이라고 봅니다. "

박씨에게 가장 기억이 남는 고객은 1991년 서울 광희동 지점 근무 당시 거래관계에 있던 중소기업 사장."중국에서 의류공장을 운영하던 분이었는데 물건이 제 때 안나와서 애를 먹었습니다. 납기를 맞추기 위해 비행기로 미국까지 물건을 실어보내더라구요. 8개월 동안 고생하다가 결국 문을 닫았습니다. 부도나던 날 '그동안 도와줘서 고맙다. 더 이상 못 버티겠다'고 말할 때 가장 마음이 아팠습니다. "

2000년 첫 지점장 발령을 받은 서울 상계지점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주변에 장애인과 지체아 보육시설 등이 많아서 매월 말이면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을 받기 위해 지점을 찾는 '손님'들이 많았다. "대부분 거동이 불편할 뿐 아니라 문맹자들도 많아 직원과 청경까지 창구 앞까지 나와서 일일이 청구서를 대신 작성하고 돈도 직접 챙겨 줬습니다. "

1999년 남대문시장 지점에서 근무할 때는 야간버스를 타고 올라온 지방 상인들이 물건을 떼고 돌아갈 무렵 새벽까지 기다렸다가 일일이 가게를 돌며 수금을 하러 다니기도 했다. 본점 자금부에서 근무하던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남자직원들과 똑같이 은행에서 야전침대를 놓고 밤새워 일하기도 했다. 주경야독해 방송통신대 경영학과와 성균관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박씨는 "매달 조금씩 10년 넘게 저축한 뒤 집을 넓혀 이사하면서 잔금을 치르기 위해 은행을 찾는 고객들 표정을 볼 때가 가장 흐뭇하다"며 "올해는 많은 사람들이 은행을 통해 꿈을 키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이심기/사진=김영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