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추얼펀드 ‘입질’…공매도 물량상환…6일새 1조5천억 순매수

[Make Money] 돌아온 외국인, 꺼져가는 국내 증시 불 지필까
외국인들이 국내 증시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대규모로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올 들어서 6일 동안 순매수 규모만도 1조5000억원에 달할 정도다.

작년에 35조원이 넘는 주식을 팔아치운 것을 포함해 4년간 국내 주식시장에서 70조원가량의 주식을 정리한 것과는 전혀 딴판인 셈이다.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넘었던 2007년 외국인은 차익 실현이라는 이유로 주식을 정리했고, 작년엔 금융위기 발발로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주식을 팔아치우기 바빴다.

이러한 외국인들이 갑자기 지난달부터 국내 시장을 기웃거리는가 싶더니 올 들어서는 매일같이 대규모로 주식을 쓸어담고 있는 것이다.

경기 침체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 국내 기업들의 이익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마당에 외국인들이 주식을 사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 돈 많아진 뮤추얼펀드와 공매도 금지 조치가 주 원인

외국인의 순매수 행진은 우선 국내 증시를 비롯한 세계 각국 증시에 투자하고 있는 해외 뮤추얼펀드들의 자금이 많아지고 있는 데 따른 것이란 분석이다.

작년 세계적인 금융위기 발발로 크게 손실을 본 헤지펀드에 투자자들의 잇단 환매 요구가 빗발쳤다.

환매 요구 행진은 작년 11월께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됐다.

해가 바뀌고 전 세계적인 위험 자산 탈출 현상이 진정되자 헤지펀드에서 빠져 나온 자금이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해외 뮤추얼펀드로 다시 이동한 것이다.

여기에 뮤추얼펀드들은 작년 결산을 앞두고 주식을 팔아 현금을 확보해 놓아 많은 자금을 바탕으로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에 지점을 두고 있는 한 미국계 증권사 임원은 "청산된 헤지펀드에서 빠져 나온 자금이 해외 뮤추얼펀드로 옮겨 가면서 돈이 많아진 이 펀드들이 업종에 상관 없이 국내 우량주를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오현석 삼성증권 연구원도 "해외 뮤추얼펀드들이 포트폴리오 조정에 나서고 있다"며 "주식시장에 단기 랠리가 펼쳐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들 해외 펀드도 국내 증시 상승에 베팅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다음으로는 주식을 빌려 판 공매도 물량을 상환하기 위해 증시에서 해당 주식을 되사서 갚는 '쇼트 커버링'이 외국인을 증시로 '귀환'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매도란 증권예탁결제원 등으로부터 주식을 빌려 주식시장에서 미리 팔고 주가가 더 떨어지면 싼 값에 되사서 갚는 투자 전략이다.

주로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될 때 나타나며 국내 주식시장에서 공매도의 90% 이상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해 왔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해 금융감독 당국이 이 같은 공매도를 주가 급락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작년 10월부터 공매도를 금지했다.

이 사이 주가가 바닥을 찍고 슬금슬금 위로 올라오자 손실을 볼까 두려운 외국인들이 서둘러 주식을 사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이달 5일 기준 빌린 주식의 총 금액을 나타내는 대차잔액 규모는 12조7845억원으로 공매도 제한 조치가 취해지기 직전인 9월30일(31조3016억원)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넉 달 동안 18조원가량의 주식을 이미 외국인들이 사서 갚았다는 얘기다.

⊙ 외국인은 국내 주식을 계속 살까

외국인의 순매수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세계 각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 금리를 인하하고,대규모 정책 자금을 시장에 풀면서 단기 유동성 랠리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들이 경기 부양을 위해 풀기로 한 자금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2%로 추정된다.

외국인은 이 기간 주식시장에 투자해 이익을 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세중 신영증권 연구원은 "금리가 내려가면 은행 예금 금리도 내려가기 때문에 시장의 자금은 더 많은 이익을 찾아 은행을 떠나 주식시장으로 몰린다"며 "경기 부양을 위해 풀린 자금의 일부만 증시로 들어와도 단기 유동성 랠리가 펼쳐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곽중보 하나대투증권 연구원도 "외국인은 작년 5월 8500억원을 순매수했다가 다음 달인 6월에 4조8000억원의 주식을 대거 정리했지만, 지난해 12월엔 8500억원가량을 순매수하고 올 들어서도 매수 규모를 확대하는 등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작년에 악재로 작용했던 문제들이 이젠 이미 드러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렇게 되면 쇼트 커버링도 더욱 본격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주가가 오를수록 더 비싼 값에 사서 빌린 주식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 매수를 유발하는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대차잔액 규모는 12조7845억원이고, 사모펀드 등이 보유한 주식을 외국인에게 빌려준 것을 감안하면 외국인은 올해 12조원이 넘는 주식을 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주식을 빌리는 대차거래 계약은 계약마다 기간이 모두 다르지만 통상 1년 안팎인 경우가 많다.

금융감독 당국은 아직 공매도 금지 조치를 풀 생각이 없다고 발표한 바 있다.

외국인 '귀환'의 혜택은 삼성전자 현대차 LG전자 KB금융 등 대형 우량주에 집중된다.

외국인은 언제든지 주식을 정리할 수 있는 대형주 위주의 투자 전략을 보이고 있으며, 외국인들이 빌려간 주식도 대부분 우량주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5일 정규장에서 외국인들이 집중적으로 사들인 종목은 LG전자(373억원) 포스코(328억원) 현대차(277억원) KB금융(266억원) LG디스플레이(230억원) 한국전력(184억원) 등으로 전날 기준 빌린 주식을 나타내는 대차잔액이 상위 종목인 포스코 현대중공업 LG전자 삼성전자 현대차 삼성증권 삼성중공업 현대건설 KB금융 한국전력 등과 일치하고 있다.

김재후 한국경제신문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