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약해지면 몸도 덩달아 약해지는 걸까. 2002년 이후 뜸하던 독감(인플루엔자)이 기승을 부린다는 소식이다. 질병관리본부 조사 결과 독감 의심 환자 수가 지난달 13일 1000명당 3.6명에서 27일엔 15.39명까지 치솟았다는 것이다. 독감의 유행 기준은 2.60명이다.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급성 호흡기 질환이다. 정부 지정 3종 법정전염병으로 감기와는 다르다. 감기는 콧물과 기침이 주된 증상이지만 독감은 고열과 두통 오한 근육통을 수반한다. 폐렴이나 뇌수막염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영 · 유아와 노인,만성질환자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보통은 아무리 그래도 감기로 여겨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전문가들의 시각은 좀 다르다. 페스트나 콜레라와 달리 독감은 아직까지 극복되지 않은 돌림병이며 따라서 언제 스페인 독감같은 무서운 독감이 창궐,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에 빠트릴지 모른다는 것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식인 셈이다. 그러나 우려는 간단하지 않다. 1918~19년에 유행,사망자만 최소 2500만명,많게는 5000만명까지 추정되는 스페인 독감의 경우 바이러스가 곧장 폐로 침입,20~40세 청장년층도 꼼짝없이 당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전파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지적이다.

바이러스의 종류가 다양화되고 내성이 강해진 것과 조류 독감 바이러스도 문제로 꼽힌다. 실제 세계보건기구(WHO)는 2004년 말 머지않아 독감이 크게 유행할 수 있고,특히 조류 독감과 사람 독감 바이러스가 혼재된 변종 독감이 출현하면 수백만명이 숨질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스페인 독감은 전쟁 말기 병영에서 발생했다. 형편없는 환경도 환경이지만 불안과 공포가 면역력을 떨어뜨렸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독감이 유행할 때 태어난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면역체계가 약해 천식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어려운 때일수록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가뜩이나 힘든데 아프기까지 하면 더더욱 버티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온 가족 모두 예방주사를 맞고 손도 깨끗이 씻고 양치질도 자주 하고 괜스레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것도 삼갈 일이다. 무엇보다 당장 닥치지 않은 일까지 걱정하느라 기운 빼지 말고.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